시든 꽃

by 고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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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

분명 이 시대의 이야기꾼 중 독보적인 한 사람이다

그의 책들 속 문장들엔 재치도 있고, 반전도 들어가 있지만

개인적 사견일 뿐이지만

깊이보다는 무언가 멋을 부린 문장들이 거슬릴 적도 많으면서도 읽게 된다


하긴 책을 읽고, 시를 접할 때

종이의 질을 따지거나 잉크의 무게를 논하지는 않으니

어떤 책은 그 문장 하나 하나를 되새김질하기도 하나

다른 책에서의 문장은 멋스러움에 또 한 번 읽게도 되나보다


'꽃은 태어나고 공부하고 짝짓고 병들고 죽는

인간사의 모든 중대한 일과 함께 한다

그 어디에서도 시든 꽃은 질색이다

시체 옆에서도, 신혼부부 옆에서도, 졸업생 옆에서도

시든 꽃은 환영받지 못한다.

때문에 꽃은, 줄기 잘린 식물의 성기는,

아주 재빨리 적절한 장소로 움직여야한다'


그의 책 중 '너의 목소리가 들려'의 한 문장이다

책을 읽다 중간 중간 어느 문장이 눈에 들어오면

필사(筆寫)를 해 두고는 한다


저 책을 언제 읽었던 것인지는 이젠 기억에 나지가 않는다

내용도 잘 기억나지 않는다


필사해 두던 노트를 뒤적이다

본 문장


꽃은 시들면 그만이다

줄기가 잘려나간 꽃이 시드는 건 그리 오래 가지 못한다


대학동기 하나가 어떠한 이유에서였을까?

스스로의 쉼을 택한 뒤

몇일이 지난 지금은 편해져 있을까?


스스로 땅에 묶힌 뿌리와의 연결 줄기를 끊는다는 거

계절이 바뀌면 뿌리와 다아있어도 시들것을


지난 주말엔 동기 하나와 술을 좀 과하게 마셨나보다

낮에 시작한 자리가 나와보니 밤이 이미 많이도 어둡고,

비가 호되게도 쏟아진다


밀려드는 갈증에 들어간 편의점의 젊은이가

빗물이 떨어짐에 대해 불평을 눈앞에서 한다

미안하다는 말을 뒤로 하며 나왔지만


세상은 이젠 그러한게 맞게 됐나보다

오는 비를 피하게 도와주기 보다

내 몸에 묻은 빗물이 나를 말해주는


걸어들어 갈 어느 공간이 남아 있다면

걸어 들어가 머물러 있고 싶다

주초, 비오는 하루의 시작이 쓸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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