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적 그 많던 골목들은 다 어디로 사라졌을까?
아니면, 내 살던 동네가 높은 곳에 있어서
좁은 골목들이 유독 많았던 것이었나?
골목의 한 쪽은 집들의 담이 막고 있고,
다른 한 쪽은 낙상 방지를 위해 보호대가 쳐져 있었다
보호대가 쳐져있는 쪽으로 내려다 보이는 동네의 모습
잣은 전학만이 아니겠지
아마도 내 어릴 적 성격의 문제가 더 컸을거라 생각한다
다른 또래들처럼 친구들과 어울리며 다니기 보다
혼자 학교를 가고,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 편했었다
오고, 가는 시간들 속에서 내 마음껏 상상의 세계속으로 들어갈 수도 있고
마치 내 어떤 누군가의 연극각본 속의 연기자로서
무대위에 올려져 있다는 생각을 하곤 했었다
이 연극이 마쳐지면 아마도 다른 무대와 다른 역이 주어질 거라
걸으면서 이렇게도 저렇게도 이야기들을 만들었다
그 중 몇가지 이야기는 고등학교와 대학시절 친구들과
실제 연극으로 무대위에 올려 먼지 투성이의 지하 연습실에서 뒹굴기도 했었다
내 삶은 내것이 아닌
난 내 삶의 관찰자라는 생각을 가졌던 시절
아마 중학교, 아니면 고등학교 1학년전후에 접했던 책일 듯 싶다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들
그 중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는 대학시절과 병원시절, 그리고 최근에
적어도 4번정도는 읽게 된 듯하다
많은 책들이 읽을 때의 나이와 감정등에 따라 달리 다가온다
당연한 것이겠지
은밀한 관찰자 이름도 없는 고양이,
그의 눈에 비친 인간들의 모습은 한심하기만 하다
하지만, 정작 고양이 임에도 쥐를 잡지 못하는 스스로에 대한 생각도 잊지 않는다
책을 읽는 순간에는 내가 고양이가 되어 주변을 돌아본다
1900년대 초반의 책임을 고려하며 문장을 읽어 간다면 사실 놀랍기도 하다
100년도 훨 더 넘은 그 시절의 일본의 모습들,
서구 문명을 접하며 변해가는 그 시대의 사람들
'나폴레옹도 그렇고 알렉산드로스도 그렇고, 이겨 만족한 이는 한 사람도 없었네,
사람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싸움을 하고, 상대가 손을 들지 않으면 법정에 호소하고,
결국 법정에서는 이기겠지,
하지만 그 것으로 결말이 났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네,
아무리 안달한다고 해도 죽을 떄까지 마음의 결말이라는 건 나는 게 아니라는 거지'
'세상을 둘러보면 무능하고 재주 없는 소인배일수록
제멋대로 설치며 격에 맞지 않은 관직에 오르고 싶어 하는 법'
'개인이 평등하게 강해졌다는 것은 개인이 평등하게 약해졌다는 말이기도 하다.
남이 나를 해치기 힘들어졌다는 점에서는 확실히 내가 강해졌지만,
좀 처럼 남에게 관여할 수 없게 되었다는 점에서는 확실히 옛날보다 약해진 거겠지.
강해지는 것은 기쁘지만 약해지는 것은 아무도 달가워하지 않으니까
남이 털끝이라도 건들지 못하도록 나의 강점만을 끝까지 고수함과 동시에
남에 대해서는 털끝의 반만큼이라도 건드리고자
남의 약점을 억지로라도 과장하고 싶어하게 되었네'
뒤이어 그러한 개개인들은 자신만의 공간뿐, 다른 이의 공간을 차지하려다보니 오히려 더 갑갑해지면서
'자신을 힘껏 팽창 시켜 터질 것처럼 부푼 상태에서 괴로워하며 살아가는거야'
책속 몇 문장을 옮겨본다
책은 고양이의 눈을 빌렸지만, 시대속 변화에 대한 비꼼이 수없이 이어진다
나는 옳고, 상대는 그름에 대해 말하지만 작가는 결국 모두에 대해 비웃음을 던진다
'마지막 장에 고양이는 술독에 빠져 애써 빠져나오려하나 그래 봤자 소용없음을 안다.
소용없음에 억지로 애를 쓰며 고통을 스스로 받을 것인지,
아니면 순리대로 저항하지 않음이 나은 것일까를 생각하며 소설은 끝을 향해간다
'어차피 죽는다면 어떻게 죽는게 좋을까?
죽는 건 괴로워, 하지만 죽지 못하면 더 괴롭지,
신경쇠약에 걸린 국민은 살아 있는 것이 죽는 것보다 훨씬 심한 고통이라네'
고양이 눈에 비친 인간들의 삶은 어떠한 것이었기에 이러한 문장으로 끝을 맺으려 했을까?
'나는 죽는다. 죽어 이 태평함을 얻는다. 죽지 않으면 태평함을 얻을 수 없다.'
소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나이가 조금씩 들어가는 지금 접함은
젊어 접했을 때와 줄쳐지는 문장들이 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