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뼘 차이

by 고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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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적 종합선물세트 하나를 선물받으면 세상을 다 가진 듯이 즐거웠었다

마치 그 안에서는 한 없이 무언가가 나올 듯했던 상자를

몇일을 바라만 보고 열지 않던 시절


사실, 그 상자안에 들어있는 내용들은 그리 많은 것을 담고 있거나

새로운 것들을 내게 안겨주지는 않았었지만

선물세트라는 단어가 주는 행복감이 좋았었던 듯하다


지금도 팔까?

싶은 마음에 수년 전 한 해가 저물어 가던 어느날

경기도 광주, 퇴촌면의 한 슈퍼에 들리니 한 껀에 종합선물세트가 놓여져 있다

아마도, 가져다 둔지 조금의 시간은 흐른 듯

색이 바래져 있는 상자


나 자신에게 선물을 주었다

조심스레 열어보니 수십년의 시간이 흘렀어도

그 안에 담겨져 있는 것들은 그 옛시절에 머물러 있는 듯

아니, 내가 그 시절 속으로 들어간 듯한 느낌을 주는 것들을 담고 있는

종합선물세트


그 어린 아이가 자라고 자라 어느 덧 오십중반을 넘어가고 있다


'청춘은 한 뼘 차이인지도 모른다

모두 그 한 뼘 차이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 사람과 내가 맞지 않았던 것도

그 사람과 내가 스치지 못했던 것도

....'


한 뼘 차이

이병률시인의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속의 한 문장이

오늘의 나를 조금은 아프게 한다


옛 사진첩을 뒤지고 뒤져 의과대학시절

친구들과 본과 진입식후 가운을 걸치고 함께 찍은 사진을

어렵게 찾아서 한 참을 바라다 보았다


이 때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참 힘든 본과생활이었었는데,

본과를 시작하면서 이미 얼마나 힘들 것인가는 선배들을 보면서

아니, 어쩌면 실제 본과 생활을 할 때보다 시작하면서 더 두려워 했었던 듯도 하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다보니 진료실에서 삼십몇년을 살아왔다


의협이나 의사회내 선후배, 동료들 몇에게서 전화가 온다

한 때 몸담던 대학의 학생대표라며 낯모르는 학생의 전화가 온다

예약한 환자 몇몇분의 전화가 온다


전화는 마치 종합선물세트처럼 많은 것들을 담아 전하려 하지만

조용한 진료실 안에 앉아 있다보니 모든것들이

다 한 뼘 차이인건 아닌지


옳음에 대한 주장은 쉽지만

내 생각이 잘못됐음을 말하기는 어렵다


한 번 달리기 시작한 열차를 멈추게 하긴 출발의 힘보다

훨 더 큰 힘이 필요한 것


무릎의 통증이 한 달째 이어져 정형외과 후배를 찾아 검사를 해 보니

퇴행성 관절염이라 뭘 하기 보다 물리치료를 하자한다

수십년을 거의 하루 종일 앉아서 지냈으니 관절들이 짜증을 낼만도 할 듯 싶다


모든 이들이 서로 다른 면을 보는

순리라는 단어의 면은 몇개일까?


그냥 한 뼘 차이가 나지 않게 꼭 안아주면

그럼 달라지는게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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