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도 빨리 사라져가는 것들

by 고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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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대학 동기들의 단체 카톡방에

후배가 한 숨섞인 글을 올렸다


세상이 너무 어수선하고,

이젠 이유나 과정이 뭔지 따지기도 싫고 관심없이 그냥 힘들다고

지쳐간다고


일이 많지 않아도 지쳐가는 일상속

휴식을 위해 점심대신 잠을 잠시 택했다

깨어 맞이한 첫 환자의 이해하기 어려운 반응


모든 치료는 여기서 다 중단하라는 명령조의 말

더 큰 병원으로 갈것이니 다 중단하라 한다

어쭈어 본다, 제가 뭐 실수하거나 잘 못한게 있나요

아니라 하니 다행스지만, 3일전 처음 진료를 했기에 더 당혹감을 주게 된다


더 큰 병원

그 더 큰 병원에서 그래도 명색이 대한민국에서 가장 크다는 병원과

대학에서의 교수직을 떠난 가장 큰 이유는 3-5분의 진료에 지쳐서인데


질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주사나 약이 아닌 환자나 보호자의 이해이기에

그 이해를 위해서는 대화가 가장 중요한 것이기에

대화를 위해 작은 내 방으로 나왔건만


우리의 현실을 몰랐었나보다

큰 병원, 그 자체가 바로 말없어도 이해이고

이해가 없어도 믿음인 것이 우리의 현실인 것을


전문성보다는 크고 작은 것이 우선

상품의 좋고 나쁨보다는 브랜드

맛이 좋고 나쁨보다는 멋진 인테리어를 갖춘 홀에서의 식사

인성에 앞서는 것은 그가 탄 차와 집, 통장 속의 동그라미 숫자, 명함에 적힌 직함


이미 오래 전에 돌아가신 고모부님께서는

지금은 어디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으나

한 동네의 버스 종점부근에서 병원을 하시던 분이다


화려함보다는 초라함이 더 많던 병원에서

고모부는 많은 환자와 함께 하셨고,

왕진가방을 들고 나가셨었다


대학 선배의 아버님도 아마도 지금의 중계동이나 하계동 정도 될 듯한 곳에서

오랜 시간 병원을 하시며, 버스 정거장 이름도 병원이름을 딴 00의원앞이라 하던 시절


두 분다 돈보다는 다른 것을 자식들에게 남겨 주셨고

내게는 의사로서의 롤모델이 되어 주신 분들


내 너무 고루한 것일까?

선생님의 그림자도 밟지 않으려 했던 시절

선생님은 화장실도 가지 않는다고 생각하던 시절


그 시절을 지내왔기에 그러한 것일까?

신분의 높고 낮음이 아닌,

적어도 서로간에 존중과 귀함을 알던 시절을 살아와서 그런 것일까?


백화점이 아닌 슈퍼와 동네의 양복점

사우나가 아닌 목욕탕


기자가 아이에게 너 어느 동네에 사니 물으니

00 아파트에 산다는게 답이었다한다


동네와 마을이 사라진 시대

수십층에 달하는 높은 아파트들이 집이라 한다

골목이 아닌 도로의 양옆으로는 집이 아닌 너무 높아 그 끝을 보려면 목이 저려오는

아파트들이 늘어만 간다


자전거가 달리고

아이들이 뛰어 다니다

집에서 누구누구야 하며 외치듯이 불러대는 엄마의 목소리는 사라졌다


한 잔술에 늦은 귀가길 마을의 누군가를 만나 동네슈퍼앞 평상에 앉아

한 잔을 더 하면서 사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던

그런 시절은 이젠 오지 못하겠지만


어차피 사람과 사람은 하나의 섬으로 떨어진 존재라 하더라도

그 섬들이 너무 멀리 떠 내려가지는 않아 주기를 꿈꾸어본다

바보처럼


나이도 얼마 되기 전에 너무도 빨리 지난 시대 사람이 되어져만 가나보다


'세상이 그 자체로 존재하는 모습이 아니라

그것이 우리에게 나타나는 방식을 문제 삼는다' 던 칸트의 순수이성비판

대학시절 없던 돈에 그래도 멋진 안주가 되어주던

어설펐던 싯귀와 문구들


그 시절이 너무 빨리 사라져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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