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속에 묻혀진 것들은 뭐고, 그 의미는 있는걸까?

by 고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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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커다란 그 끝이 보이지 않는 하얀 도화지위에 서 있었다는 생각

그게 인생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아직 아무것도 그려지지도, 칠해지지도 않았던 그 도화지위에서

쉼없이 뭔가를 하며 살아온 세월들이지만

해 질녁이 되니 그 모든 것들이 갈 수록 길어지고 짙어지는

그림자속에 담겨 사라져간다

아침 출근길 친구의 전화

뭐 하러 우리 이렇게 살아왔지?

이제 돌아보면 아무 의미도 없건만, 뭐하러 지금도 벗어나지 못하고

주인을 탓해가는 육체를 이끌고 오늘도 가는걸까?

어찌 살아왔던

그져 검은 빛만 남기고 길어만, 짙어만 지는 그림자속에

뭐가 들었든 어떤 의미가 있겠나

그래도, 고마운 건

황홀한 저녁노을이 눈앞에서 나를 마주하여주기에

뒤로 그림자가 드리워질 수 있음일지도

웃어야한다

그리고, 나를 잊고 다시 진료실안에서 내 앞의 분의 또 다른 내가 될 수 있어야한다

그래야, 그 간 내 살아온 삶들의 의미를 잃지 않을테니

지금까지 할 수 있다면, 의사로서보다 환자가 되어 생각을 하고 판단을 하려했다

비롯, 하루 진료수가 턱없이 적어 아직도 은행의 도움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지만

나이들어, 몸이 주인에게 화를 내며 골을 내다보니 나 스스로 나에게 변명의 위로를 이렇게 나마 하게 된다

저녁 노을이 질 떄면,

유독 많은 새들이 하늘을 나르며 자기의 갈 길들에 서둘러 길을 잡는 듯이 보인다

갈 곳들이 다 있어 보인다

커다란 하얀 도화지위에 서 있는 나이든 덩치큰 바보곰은 아직 발을 어디로 뗄지 정하지 못했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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