뭣이 중헌디?

by 고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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뭣이 중헌디?


비오는 출근길

어제 알고 지내던 한 후배의 연락이 머리에서 사라지지가 않아서일까?


차창에 맺혀지는 비로 얼룩진 밖의 풍경들이 낯설게 다가오며

갑작스레 예전에 보았던 영화의 한 대사가 머리를 채운다

기억이 맞다면 영화 곡성의 대사중 하나가 아니었던가 싶다


'뭣 이 중헌디?'

세상사에서는 뭣이 중한것일까?


하긴 나도 젊어, 아니 어렸다는 표현이 더 어울리지 않을까 싶다

뭔가를 한다며 영아, 유아, 청소년, 중, 장년에 노년등을 구별하며

학회활동도 하고

그에 맞는 뭔가를 해 보려했었다만


어느 순간 느껴진것은 이러한 구별, 나눔은 결국

또 하나의 갈등과 그에 대한 인위적 시장만을 만든다는

사실에 다 손을 뗐었다


한 요양병원의 자문을 맞았었던 시절이 있었다

조금만 손을 더 쓰면 자가 식사가 가능한 분들에게도

코로 튜브를 넣어 유동식으로의 식사를 주면

간병인의 수고도 덜어지게 되어 인건비도 줄고,

또, 보험숫가에서도 환자의 등급이 올라 심평원에서 지급되어지는

급여의 기준이 올라가게 되다보니

환자와 무관한 기준하에 이루어지던 행위들


이제 육십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어서 일까?

절음과 나이듬에 어떤 기준이 있는걸까?

의학적인 신체의 변화, 생리적인 변화, 정서적인 변화는

어쩌면 사회적 시장논리하에서의 밀어붙임도

한 부분 작용하게 되는건 아닐런지


아이러니한 것은

나이든다해서 경제적인 나이듬에 대한 배려보다

노인에 대한 시장성의 평가가 더 앞서는건 아닌가에 대한

생각이 내리는 비를 더 어둡게 느껴지게 만든다


쉴 시간을 얻지 못하는 나이듬이 더 많아지는

시절이면서도...

나이들어 비에 젖어드는 뒷모습은 조금 더 힘겨워만

보여지게 되는 시대가 되가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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