껍데기는 가라

by 고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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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역사속 많은 이야기들을 몇단어로 추스려본다면

명예, 권력, 사상, 종교

하지만 이를 다 하나로 묶어 논한다면

그 대상이 자신이든, 타인이든, 이상이든, 정신이든

결국 사랑이란 단어 하나로 메이게 되는게 아닐까?


괴테라는 인물

솔직히, 살았던 공간도 시대도 낯선 곳

그의 책들을 접한 건 젊기도 전 어려서

괴테라는 이름이 이끄는 지적호기심, 아니 어쩌면

난 척하려는 이기심으로 접하게 되었었을지도 모르겠다


이 나이가 되서 다시 읽는 파우스트

나이가 드니 조금 더 부끄러움이 적어져서 일지

뻔뻔해져서 일지는 모르겠지만

젊어서 그럴 듯하게 그 책은 말야~~~ 괴테가 ~~~

보다는 적어도 내 정서에는 와 닫는 부분이 적다

학자로서 권력이나 돈이 아닌 지식을 얻고자 악마와의 거래

하지만, 파우스트 전반을 흐르는 건 사랑이야기다

1부에선 현세의 그레첸과의 슬프게 마쳐지는 사랑이야기

2부에선 뜬금없이 트로이의 헬레네를 지상으로 불러내서 맺는 사랑이야기

그 끝맺음은 어찌 보면 마치 계몽주의로 흐르는 듯한 모호함

헬레나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을

잃은 파우스트는 더 이상 사랑이란 개인적인 것에서 벗어나

사람들의 삶을 보게 되며

그 들의 척박함, 힘듬, 고됨의 근원인 땅을 얻고자

간척사업을 시작하고

사업의 마무리를 보며

‘멈추어라, 너 정말 아름답구나’ 라는 말과 함께 죽음을 맞이하여

결국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와의 계약대로 지옥으로 가야하지만

그 시대를 지배했던 종교의 힘이을 괴테도 벗어날 수 없었던 것일까?


사랑하던 여인 그레첸의 도움으로

주님의 품안으로 들어간다

악마는 하느님이 인간을 사랑하시기에 포기하지 않는다

인생속 무엇을 잘하고 못하고가 아닌,

나약한 인간의 모든 것을 하느님은 사랑하기에 포기하지 않는다

그것을 은총이라 한다는 종교적말로 그 긴 소설을 맺음함은


누군지도 모르는 단지 한 번본 왕자와 신데렐라가 행복하게 산것이나

자신을 돌봐준 난쟁이보다 지나던 백마탄 왕자를 택한 백설공주나

우리의 콩쥐팥쥐이야기


사랑으로 포장되었지만, 신분적인 상승을 해피엔딩으로

오래 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로 맺어지는 동화들이 더 솔직한 것은 아닐지

하긴, 신분이 다른 두 사람이

진짜 오래 오래 행복하게 살았을지는 지켜보는

당사자가 아니면 모를 일이지만

그 어느 집도 밖에서 보는 것과 안의 일은 모르는 것처럼


파우스트를 나이들어 읽으니

키다리아저씨에 대한 책에 먼저 손이 간다


한가한 진료실

독일계 유태인으로 체코에서 살아야했던 카프카

프랑스계로 어린나이 군인 아버지를 잃고 식민지 알게리에서

성장해야했던 카뮈


자신의 힘듬을 겪게 하지 않기 위함아니었을까?

아들의 재능보다 내일과 신분적 안정을 위해

법을 공부하길 강요했던 카프카의 아버지


정신적으로 자신을 지배하던 것과는

다른 현실의 모습들에 좌절과 갈등을 이성적으로

이겨내 스스로의 힘과 다리로 가고자 한 길로 걸어들어간

카뮈


그들의 작품이 괴테에 다름은 아마도 그 들의 환경과 그 들이 써야했던 시대가 달랐었기에 그러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렇듯 책을 접하고, 글을 읽고 그 들을 대하게 되는 나 또한 다르기에 지금의 나로 그 들을 평하는 것은 오만이겠지


그 오만임을 잊고 생각하지 않는게

덜 외로울지도 모르겠다

파우스트처럼 미래의 영혼이 아닌 지금의 영혼을 팔 수 있어

생각없는 하루

빈껍데기의 나로 살아가고 피어진다

사실, 내 가진 껍데기의 가치의 무게도 모르는 것이기에

어쩌면 빈껍데기가 더 솔직한 것일수도 …


신동엽시인이 욕하겠구만

‘껍데기는 가라’했는데


남은게 껍데기뿐인 것을 어찌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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