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든다는거, 낡아간다는거

by 고시환
KakaoTalk_20211127_101139568.jpg
DSC06527.jpg
XL.jpg

9시반부터의 진료

8시반 진료실을 들어서니 기다리는 환자분이 계시다

태백에서 첫차로 올라와 일찍 오게 되셨다고

오히려 미안해하신다


미안함

그 정서

사람이 사람에게 가지는 정서중 가장 순수한 것중 하나가

상대에 대한 배려를 위에 있으면서 미안해 하는 것이 아닌

진정 상대에 대한 존중의 마음이 전해져 아침이 따스하다

제가 좀 더 일찍 나왔어야하는데 죄송합니다하고

답인사를 드리고 가져오신 커피를 함께 나눠 마시며

태백이야기를 나눴다

작년엔 눈축제를 못했는데, 금년엔 할 수 있을 듯하다고


그 뒤 이어진 토요일의 폭풍 같은 시간들이 지나니

조금의 여유가 생긴 시간

어제 저녁 읽다잔 김훈의 공터에서가 머리속을 맴돈다

김훈작품은 초기와는 참 많이 달라졌다

그의 작품의 달라짐에 하나 기쁜 것은 대단한 누군가를

특정한 주장이나 삶이 아닌 일상인들의 이야기를

덤덤히 그려가기에 끌린다

때로는, 내 모습 같은 이야기들을 힘줌없이 툭툭던지는 그의 문장들

소설속 일제시대의 평범했던, 전쟁당시 살아남기 위해 바닥을 살았던 한 인물의 아들 마장세와 마차세의 이야기, 그 중 마차세는 공원에서 조랑말을 타겠다는 딸아이의 조름에 태워준 늙은 조랑말의 모습을 이야기한다. 조그마한 조랑말은 마치 큰 개정도로 보였고, 비쩍 마른 그의 몸은 뼈와 피부사이에 핏줄들이 드러나서 마치 살아있는 말이 아닌 박재된 표본과도 같이 보였다 한다. 그 조랑말은 공원을 한 바퀴돌고 다시 다른 아이를 등에 태우고 다시 고개를 쑥인채 터덕 터덕 공원을 돌고 돈다. 말의 걸음은 힘이 없이 그냥 트랙위를 돌고 돈다. 아마도 말은 평생을 재갈을 물고 그렇게 돌면서 입에 물린 재갈을 뱉어내려 혀를 길게 길게 내밀며 살아왔겠지만 결코 그 재갈은 그가 죽기 전에는 벗어지지 않을 것이다.


일제를 중국 상해에서 부둣가의 막노동과 헛일들을 하며 버티고, 해방된 자기의 나라에선 피묻은 군복을 빨고 밑바닥으로 살아가다 죽은 아버지, 피난시 가족과 젖먹이 딸을 잃고 남에서 어쩌다 맺은 인연으로 두 아들을 나아 새 가정을 책임지다 죽은 어머니


베트남전쟁에서의 정신적 상처, 정글속 살기 위해 움직일 수 없던 전우를 죽여야만 했던 형 마장세, 그 모든 가족들의 아픔을 고스란히 안고 살아야만 했던 마차세, 돌아보면 상황도 시대도 다르지만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가장의 모습과도 같은게 아닐까?


김훈이 소설의 끝마무리로 넣은 조랑말의 모습

그 모습이 결국은 내 모습이 아닐까 싶다

토요일, 일주중 하루 일해 한 달을 버티는 앵벌이가 된 내 모습은 여기서 얼마나 다른 걸까?

낡아간다는 거

그건 김훈의 다른 소설속에서도 보여준 모습들을 보면

당사자는 힘겹지만, 주변인, 그게 가족이라해도 그 낡아감은

용도가 줄어듬은 귀찮음, 피곤함으로 전해지나보다

잠시의 쉼이 끝나려나보다

대기실이 다시 찬다. 그렇게 오늘 내 할 일, 책임, 임무를 이어간다

매거진의 이전글나이 오십, 오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