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키즘에 다시 잡히게 되는건가?

by 고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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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시절, 아니 어렸던 시절

아나키스트들의 이야기에 홀렸었던 적이 있었다

무정부주의, 그 시절 이 단어도 공산주의, 사회주의와 연관 지으며

관련 서적들이 단속되는 무식하기만 하고 편협적이던 시절의 청춘

아나키즘은 오히려 중앙집권적이며 이론과 곁으로는 개인보다는 전체의 효율적 평등을 논하는 사회주의 공산주의와는 반대되는 개인주의로서의 몸과 사고의 자유를 말하는 것도 당시에는 반사회적으로 비추어졌었나 보다


촘스키는 ‘권위는 정당화되지 않는 이상, 본질적으로 부당하고 이 정당성을 입증할 책임은 권위를 쥔 자들에게 있다’라 했다


아나키와 아르키

아르키의 사전적 의미로 본다면 아나키의 반대적 의미라 해야 할 것이다.

군주제, 공화국, 봉건제등 권위적 조직에 의한 집중된 특정 권력에 의한 사회

아르키는 대중이 통치자를 추앙하고 떠받드는 사회를 말한다면

현대적으로 해석해서 생각해보면 아나키에서의 중심은 현실상 권력은 특정자에게 주어질 수 밖에 없다 해도 그 권력자의 힘이 나올 수 있는 추종자로서의 개인, 지금 사회를 시끄럽게 하는 선거와도 같은 개인의 하나하나의 권리가 선거라는 어느 한 시간대에 머묾이 아닌 연속선상에 놓여 있을 수 있다면, 타협된 아나키즘이 이루어지는 건 아닐까?


TV나 언론은 무슨 무슨 전문가를 말하면서

다양한 평론을 내 놓는다, 전문지식이나 직위가 권위, 권력을 말하는 시대가 되버렸나보다. 촘스키가 말하던 정당한 권리는 없다던 시대는 시간이 흘러도 이어져가고, 언론의 힘이 강해지면서 그 권력은 더 강해져만 가면서 그 전문성은 실제의 전문성이 아닌 포장되어진, 아니면 말고 식의 그 져 어제와 오늘의 이야기를 마치 내일의 이야기인 것처럼 말들을 하는 건 아닌지…


어딘가에 속하고, 통제 받는데 난 어울리지가 못하나 보다

아마도, 어릴 적 국민학교 6년간 다녔던 다섯 차례의 전학이 만들어준 내 유년기의 상처가 준 조직내의 미성숙을 핑계로 삼아도 될지 모르겠다.


어릴 적부터 혼자에 익숙해지다 보니, 책을 친구할 수 밖에 없던 것이 더 정신적 고립을 만들었었을지도 모르지만, 고마운 것은 글을 통해 나를 털어내는 법도 가르쳐주었다. 읽고 쓰고, 하지만 그 글은 누군가의 책을 옮기는 데에는 거부감을 가지게 된다. 화자가 돼서 쓰는 글, 내가 쓴 글은 내가 책임을 져야 하기에 그 글의 화자는 내가 되야 한다는 생각


레지던트 시절

외과의는 칼로서 그 결과를 말한다면, 내과의는 챠트와 처방전으로 말을 해야 한다 배우고 또 후배들, 후학들을 가르쳤었다. 환자를 보지 않아도 챠트로 처방전만으로 이 병원, 저 병원, 이 나라, 저 나라의 다른 닥터들이 보았을 때 이러 저러한 이유로 이러한 처방이 나왔구나가 전달될 수 있어야한다 배웠다. 그리고, 그렇게 가르쳐왔었다.


챠트의 글들은 환자를 보면서 적게 되는 것이기에

그 화자는 나여야만 한다.

검사결과가 그랬다거나, 어느 교과서에서 그랬다가 아닌 검사결과와 교과서의 내용들을 기초로 보아 내가 내린 결론은 이거라는 것을 분명하게 표할 수 있어야만 다음의 것을 할 수 있는 것임을…


매일 적어도 한 두 편의 글을 쓰다 보니, 감사한 몇 분들의 초대로 들게 된 밴드들

어제 몇몇 밴드들을 정리했다

글에 대한 평가는 당연한 것이나, 글과 무관한 여러 다양한 제약들

밴드도 하나의 사회이기에 밴드에 맞는 규정은 당연한 것이기에 맞지 못하면 그 안에서 구속됨보다 나옴이 밴드내 다른 분들에 대해서도 예의라 생각했기에, 아마도 젊은 시절의 아나키즘이 아직도 내 안에 남은 것인지는 몰라도 이제 부터의 시간들은 가능함 속에 구속됨 없는 나를 내가 지키고 싶어진다


책상 위에 놓여진 몇 모금 남은 커피를 마시고

책을 보면서 쉬고 싶은 하루다

진료실이 한가롭다 해도, 오늘은 입은 좀 쉬고 싶다


오래됨

시간이 벌써 그리 흘러갔나 보다

내 존경하던 분들의 면허번호는 나보다 3만번은 빨랐던 분들

내 면허번호가 3만대건만, 어느 덧 후배, 후학들의 면허번호가

이십만번대가 되가나 보다

학회, 연수교육을 가면 선배보다 후배, 후학들이 더 많아

인사를 하는 것보다 받는 게 많아진 나이가 되어 버렸다


그 오래됨 속에서

못나게도 난 다시 옛 것, 옛 시간의 나로 돌아가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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