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온다
시절을 보내려는 눈
왠지 모르게 인연을 끝내려는 메시지처럼 다가온다
‘제일 미운 것은 율정점의 문 앞길이 두 갈래로 난 것이네
원래 한 뿌리에서 태어났는데 낙화처럼 뿔뿔이 흩날리다니
천지를 넓게 볼 양이면 모두가 한 집안이건만
좀스레 내 꼴 내 몸만 살피자니 슬픈 생각 언제나 끝이 없지’
형제가 어찌 둘 다 이리도 영명하고도 그 뜻이 곧았었을까?
정약전과 정약용
형제지만 평생을 서로 의지했던 삶의 동반이자
학문의 벗이었던 둘의 모습을 보면
부러워진다
만약 종교의 박해로 흑산도로의 유배가 없었다면
정약전의 자산어부가 있을 수 있었을까?
또 한 사람
역사에 남게 되는 김정희도 정쟁에 의한 유배가 없었다면
반쪽이 인물로 남아 있게 되지 않았었을까?
제주 유배지에서 울타리 밖을 벗어나지 못한 9년속
중죄인과 가까이함을 기피하던 다른 이들과 달리
그의 학문을 추모하던 벗 이상적이 보내주던 편지와 서책들
이에 감사의 답례로 보냈다던
편지와 그림이 바로 세한도
‘한 해가 저물어 추울 때가 되어야
소나무와 잣나무는 잎을 떨구지 않았음을 안다’
논어의 한 구절로 벼슬자리에 있을 때 가까이 곁을 주던 이들이
유배의 죄인이 되니 모두 외면하건만
추운 겨울을 끗끗하게 견디며 푸른 잎을 떨구지 않는 소나무와도 같이
그 맺어진 연의 소중함을 지켜주던 이상적에게 ‘추운 겨울’
이란 제목으로 전해준 편지 속 그림이 바로 세한도였다 한다
150여년전이니 사실 그리 긴 오래 전의 이야기도 아닌 것을
급하게도 흘러가버린 시절 속에서
아주 먼 시절의 이야기처럼 다가온다
이유 모르게 마음이 흔들리고
어지러운 듯
얼굴과 눈이 말라오는 하루
주말 오전 진료를 하다 쉬다 하며
어제 밤 책 속에서 접한 세한도를 다시 펼쳐 몇 번을 보고 또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