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만이라도 고맙다

by 고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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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초반엔 압구정에서 병원을 했었다

성장, 성조숙증, 당뇨등 내분비전문병원을 표방하며 비교적 규모도 가지고,

도움을 주는 다른 닥터들도 두면서 의욕이 넘치던 시절

하지만, 어쩔 수 없는 내 기본 심성은 아마도 어울림에 대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던가보다

그 때는 그런 것을 인식도 하지 않았지만,

모임은 거의 나가는 일없었고,

퇴근뒤엔 병원뒤 아주 작은 바겸 카페 "N"바라는 곳에서 간단한 한 잔을 하고는 했던 시절

주인과도 나이가 같다보니 자연스레 친해져 저녁도 바 냉장고안의 내용물로 그 때 그 때 맛난 것을 안주대용으로 하여주던 곳

그 곳에서 한 사람을 만났다

나와는 성격이 아주 정 반대의 호탕하면서도 잘 웃고

옆 테이블과도 서스름없이 어울리던 그와 어찌하다보니 맘도 맞았고

나이도 어슷비레하다보니 같이 있으면 즐거웠었다

일주면 2-3번은 약속없이 누가 먼저랄 것없이 "N"바에서 바주하곤 하던 그 친구

압구정은 내가 먼저 떠났다

그 뒤로도 그 친구는 꾸준히 내게 연락을 주고 이거 혹 필요해 하며

묻지도 않은채 뭔가를 보내주던 그가 내 기억으로는 7-8년내외의 어느날 들려오는 소리로 큰 부도와

감당키 어려운 부채를 안고 도망을 다닌다는 이야기를 들은 뒤로는 소식이 끊겼다

연락을 해 보려해도... 닫지 않는 어느 곳으로 가 버린 그 친구

성남은 돌아보니 내 모르는 곳들이 아직 많은가보다

현대와 과거가 공존하는 곳

그것도 바로 보도 하나차이로, 한 쪽은 8차선 10차선에 호화롭기만한 건물들이 자리하지만

인도를 건너 건물뒤로 들어서니 70년대의 모습이 보인다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여관, 여인숙 아마도 외국분들이 많은지 단지 투숙에 대한 표지들이 여기저기 붙어도 있고, 오래된 식당에, 다방들의 간판이 적지 않게 보인다

퇴근전 그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처음엔 미안하게도 누군지 알아채지를 못했지만,

상대가 웃는 목소리에 아~~~ 너구나 하며 가슴이 설레게 반가웠던

오늘 갑자기 전화해서 미안한대, 시간되면 얼굴 좀 볼 수 있을까하는 그의 말에

없어도 갈건대... 더 없이 반갑게 어디야 내 갈게 핸드폰으로 약속장소를 보내주겠다 한다

신흥역

뒷 골목의 한 호프집

이른 시간인지 손은 나 하나

친구는 약속시간이 지나도 오지를 않아 마른 안주하나만 시킨 채 호프안을 돌아보고 또 돌아본다

뭔가 지루해보이는 주인 아주머니의 모습

이미 호프집 창밖은 어둡다

벽엔 소주와 맥주등의 달력이 3개나 달려있고,

오래 된 듯한 액자속엔 한 여인이 장미속에 덮힌 사진이 보인다

그 사진이 참 따스해 보인다

1시간을 기다렸건만,

친구는 결국 오지도 메시지도 없다

약속장소를 알려준 메시지로 전화를 하지 결번이 나온다

보고 싶었는대... 나와 취향이 비슷해서 'N'바에선 커티삭을 주로 마셨었는대...

지금도 나오나 모르겠다. 사실 오면서 주변을 둘러보며 술을 파는 곳이 있으면 커티샸을 사오려 했었는대...

그래도, 목소리를 들은 것만으로도 맘이 편하다

어제는 그래서일까?

수면제를 먹어도 잘 못자 힘들어했었는대, 푹 잠을 잤다.

사진 속 여인의 품 처럼 그 친구에게도 따스함이 있었으면 싶은대...

보고싶어진다. 목소리를 들으니... 한 번 더 그 친구와의 이젠 벌써 20년안쪽의 인연과 둘이 헛소리하며 웃던 날이 다시 올 수 있을까?

오늘 아침에도 출근길 e-book에서 듣기로 해 논 목소리론 한 여성성우의 매마른 목소리로 카뮈의 부조리에 대해 읽어내려간다. 인간들의 삶은 그 부조리를 인식못하거나, 잊거나, 거부하려는 과정의 연속됨은 아닐까 싶다.

시지프스는 어차피 알기에 부조리함속에서 자살을 못한다

결국 자살뒤편의 장막속에 또 다른 부조리가 있을걸 그는 신들이 알려주지 않았어도 이미 알기에 오늘도 어제 처럼 바위를 굴릴 뿐이다. 시지프스는 현명한 걸까? 아니면, 착각을 하고 있는걸까? 벗어날 수 없는 부조리속의 갖힘은 너무 잔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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