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겨울 자취방을 벗어나면...

by 고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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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겨울 추운 자취방을 벗어나면……


‘또 한 페이지가 건성 넘어가고 있다

줄거리 건너뛰며 대강대강 읽는 날 늘어난다

한 시절 콧날 우뚝했던 그녀 무럭무럭 늙고 있구나

낮에 입은 여자를 벗고 어머니로 갈아입은 그녀가

….’


이재무 시인의 시집 슬픔에게 무릎을 끓다 중

‘목련 피는 저녁’의 일부다


김경주시인은 또 목련을 노래하며

12년 자취를 논한다

그러고 보면 근 60년 이 세상 속에서 난 자취를 해 온 듯

언젠가 이 자취생활을 마치면 내 몰렸던 내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겠지


목련 꽃은 재미나다

군 재대 후 삼성에 발령을 받으면서 병원 뒷동네로

이사를 했던 곳이 목련아파트

그 곳엔 이름처럼 목련 꽃이 이른 봄이면 흐드러지게 피곤했다

하지만, 내겐 겨울의 목련이 더 다가오곤 했었다


겨울이 되면 우리 인간은 옷깃을 여미고

동물들은 지방이 오르고

식물들은 잎을 떨구고, 그 자리에 겨울눈(winter bud, 冬芽)을 입는다

목련도 잎눈과 꽃눈 속에서 겨울을 나고

이른 봄 잎에 앞서 꽃을 피운다

다른 어느 시인인가는 목련의 꽃은 꽃이 아니라 잎이라고도

했던 듯


난 그 겨울눈을 입고 있는 걸까?

어제 꿈이 좀 힘들었다

몸일까?

마음일까?

아직 옷을 입지 못한 추운 자취방에 남아있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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