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의뢰서 ^^
진료기록이 전혀 없는 생소한 한 사람의 보호자 분이 오셔서 대학병원 예약이 되어있으니 진료의뢰서를 희망하신다.
세상에는 본 뜻과 다르게 쓰이는 게 어디 하나 둘일까?
덜 익었을 때는 화가 났었고, 조금 더 익었을 때는 안타까웠었는데
아마도 지금은 그 보다 조금 더 익어 가나보다
그냥 저 사람은 뭐라 하든 저 분의 길이 있고 거기서 얻는 것도 그 분의 것이라는 느낌 이외에 드는 게 없는걸 보니
염세주의의 대표적 한 사람 쇼펜하우어를 좋아했던 적이 있다
그는 가장 최선은 태어나지 않는 것이고, 차선은 빨리 죽는 것이라 하면서도 천수를 다 누비고 돌아가셨다. 그것도 부자인 아버지의 재산으로 평생 노동 없이 하고픈 철학만을 하면서도 염세주의로 살아가셨던 분
그 쇼펜하우어가 한 말 중 ‘이 세상에 나 이상의 존재는 없다’
내게 비순리적인 것을 요구하는 분도 그 분의 생각으로는 순리일 테지
나도 또 누군가에겐 비순리적인 것을 내 생각만으로 논할 수도 있었을 것이고, 그러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
서로 안다는 것
잘 아는 식당을 가면 주문하지 않아도 내 좋아하는 것을 내 주고 다른 테이블에 없는 계란 후라이 하나를 올려주신다. 계란후라이는 왜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 않을까? 아니 먹지 않고 눈으로만 보아도 푸근하다. 아마도 기억이 남아있을 어린 시절 내게 주어진 할머님의 손주사랑의 시작이 계란후라이였었던 듯싶다.
진료실에서 진료의뢰서보다 더 중한 계란후라이를 받아 갈 수 있는 분들이 더 행복한 분들이 아닐까?
내 진료영역 밖이면 나 스스로가 전화로 대학에 자리를 만들어 예약을 잡아줄 것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