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과 신경치료, 오늘은 좀 오랜 시간 치료가 이어져서 인지 마취의 흔적이 머리에 남아 어지럽다
치과 침대에 누워있으면, 가슴이 옥조여오며 누군가 손을 잡아라도 주어 혼자가 아님을 전해주었으면 싶은 바램도 가지게 되는걸 보면 혼자라는 의미는 꼭 누군가가 있고 없고보다 맘속에 것인지도 모르겠다
진실
현실속에서 진실이란 존재할까?
또, 그 진실의 의미와 가치는 얼마나 되는 것일까?
소설과 영화로 2-3번을 본 팀 버튼 감독의 'Big Fish'를 어제 또 한 번 보았다.
또 다른 영화, 이 역시도 책과 영화로 2-3번이상은 본 듯하다 'life of Pie'
삶속의 이야기들중엔 때론 진실보다 더 중요한 것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눈에 보이는것, 귀에 들리고, 이성이 말해주는 것들이 진실이라고 할 수 있을까?
주말, 보고싶던 뮤지컬 한 편을 접했다
대학로의 한 크지 않은 소극장에서 이루어진 창작 뮤지컬 '빈센트 반 고흐'
두 배우의 작은 무대지만 울림이 강한 뮤지컬이고, 극속 넘버들도 대 극장의 그 어떤 유명 뮤지컬에 비해 손색이 없어 보였지만 무엇보다 극을 보면서 고흐의 정신, 그의 혼을 담기에는 고흐라는 인물 자체가 너무 작지 않았을까? 작은 그의 육체속에 너무도 큰 것들이 담겨 있었기에, 그의 삶이 그리도 힘들게 넘침을 겪어야만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만약 고흐가 'Big Fish"의 에드워드 볼륨이나 'Life of Pie'속 파이 파셀 처럼 삶을 보는 눈을 다르게, 객관적이기보다 자신이 보고 픈 것으로 볼 수 있었다면 조금은 덜 힘든 삶을 살아가며, 더 많은 시간 우리들을 그의 색의 강렬함의 세상으로 데려가 줄 수 있지 않았을까?
하긴, 나 자신부터가 그러지를 못해한 삶이었으니...
이성적 판단과 현실에 대한 해석과 따짐속의 수십년의 시간들이 내게 안겨준 것은 결국 지침과 나이에 맞지 않는 육체와 정신의 결과물의 침전만 남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오스카 와일드의 아마도 유일한 소설이 아닐까?
'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속에 보면 '초상화가 그림의 모델을 대신해 늙어 간다'는 문장이 있다.
대신 늙어 간다
소설속 도리언은 방탕한 생활을 하고 자신을 돌보지 않지만, 자신은 젊고 건강미를 잃지 않지만 대신 그의 초상화가 점점 늙고 추해져 간다. 도리언의 향락주의, 와일드는 사실 고지식한 도덕적이거나 자아성찰적인 것이 아닌, 당장 삶속의 자유로움과 풍요를 말하면서도, 반면 나만의 것이 아닌 모두의 낭만적 삶을 논하지만 가능할까? 내 방식의 내 편한 삶, 그 댓가는 내 초상화가 대신 치러주는 자유로움의 영혼
아직 마취가 덜 풀려서일까?
따스한 물안에 잠기고 싶어지는 하루다
아니, 더 솔직한 감정은 따스한 물처럼 편한 품안에서 좀 쉬고 싶다
금년엔 왜 이리 몸살기운이 자주 오는 것일까?
식은땀에 머리가 어질 어질한게 좀 쉬고 싶은 맘이 간절하건만 오늘도 법칙은 어김없이 또 맞아가나보다 이 글 하나 씀에도 몇번을 중단하다 쓰게 되네, 처음 오시는 분들의 진료는 시간과 힘겨움이 더 한건만 이런 날엔 초진이 다른 날보다 더 많은 이 법칙은 벗어남이 없나보다. 소개받아 오시는 분들이라, 더 신경이 쓰일 수 밖에 없는 분들이 20-30분간격으로 계속 이어진다. 성조숙증으로 첫 치료 시작아이의 엄마의 눈가가 붉어진다. 그 누구의 탓이 아니건만, 아이보다 엄마에 대한 위로로 또 수십분의 시간이 지나고 나서 정신을 가다듬고 보니 와이셔츠로 축축함이 느껴진다.
본 환자수가 많지도 못하건만, 하루가 다 지나간 듯 오늘은 몸이 내게 경고를 준다
세상속 진실이란 무엇이고, 그 의미가 어떠한 것일까?
치과의 마취가 풀려가기 때문일까?
진료의 빈 시간이 되니, 오히려 정신이 더 흐트러지려한다.
그 흐트러짐속에 쓰여지는 글들, 글을 쓰는 이 습관은 어쩔 수 없는 그냥 바로 나 인가보다.
그냥
잊지 말자... 이젠 그냥 흐르는 대로 살고자 했던 것을...
이성보다, 내게 편하게 생각하고 해석하고 이야기를 만들어 거짓말쟁가 되더라도 나 편하게, 아니 편함보다 맘의 평온함을 얻게 되기를 내가 나에게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