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를 위해
때로는 나를 이해시키기 위해
때로는 서로가 함께 하기 위해 말을 하곤 했지만
그 말이란 것이 내가 하는 대로 상대에게 전해지는 건 어려움을 삶의 시간과 수많은 관계들이 알려줘 왔다. 사람들은 대부분이 내 안에 갇혀있기에, 나 역시도 그러하고
많은 이들이 그 들의 길을 가면서 상대의 문제를 논한다
말이란 그 문제를 논하는 벽에 벽돌 하나를 더 얹게 되는 것일 수도
짧지 않은 시간 앞을 본다 생각했지만
돌아보니 위를 보며 살아온 듯하다
문제는 뭘 위해 위를 그리도 바라보며 왔을까?
목이 아파오는 지금에서야 그 질문을 내게 던진다
재미난 철학자가 하나 있다
이름부터가 Peirce, 철자법상 ‘l’는 ‘r’다음에 왔어야 하는데
그 순서가 바뀌었다. 스스로가 자신의 이름부터 오류로 시작한
센더스 퍼스는 오류론자라고 자칭한다
그 오류론자 퍼스는 인생을 절대 확실한 답을 찾을 수 없는 과정이라고 정의 내리면서, 인간은 항시 지금 현재까지 안다는 오류의 증거들을 추론해서 답에 근접했다는 오류를 범하면서 살아간다 말한다.
인생이란 그런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