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사연이 있겠지/ 무슨 까닭이 있겠지…… ‘
철새, 손님이라고해야할까?
영어로 A bird of passage 또는 migratory bird’가 철새라 하는걸 보면 우리말이 더 정감스러운 듯하다. 영어로의 표현을 직역하면 처량하고 좀 느낌이 건조해지는 듯싶다.
무리에서 떨어져 혼자 있는 새
이미 잎들도 다 져버린 나뭇가지에서 혼자 어디로 가야 할까를 고민하는 듯한 느낌을 받는 건 저 새 때문일지, 이를 보는 이의 마음인지 어느 쪽이지 모르겠다.
무리지음보다 홀로가 더 인격적이고, 생각과 고민을 할 수 있는 지적 삶이라던 쇼펜하우어의 말을 안주 삼아 혼술을 하는 시간들이 늘어난다. 만남도 2-3명이 넘으면 꼭 필요한 자리가 아니면 피하게 되고, 아마도 속에 담긴 사연들이 많기에 그러하겠지? 듣기보다 말하기에 바쁜 모임 속에서 바쁘게 움직이는 입들을 보면 무언가 저 속에는 말하지 못하고 있는 게 있을 텐데 싶어지기도 한다. 섞여 나 아닌 그냥 말들을 하다 헤어지고 나서 찾아 드는 더 한 허탈감보다는 때로는 책 한 권, 음악 하나, 영상 한 편과 함께 하는 혼술, 또는 옆 테이블을 구경하며 마시는 한 잔술 뒤 홀가분하게 일어날 때가 충만스럽기도 한 것을 보면 무리에서 벗어남의 가치를 말한 쇼펜하우어에 동조하게 되기도 한다.
그래도, 마른 가지 위의 새한 마리에게는 왠지 모르게 손을 내밀어 보고 싶어지는 계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