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과 여행을 떠난 아내의 빈 자리
퇴근시간이 되니, 아들에게서 언제 들어올거냐는 문자가 온다
자신이 저녁을 준비하겠다며, 뭘 먹고 싶냐 묻는 아들의 메시지
들어가보니 고기를 굽고, 수제비를 제법 해 놨구만
아마도 아내가 여행전 아들에게 몇가지를 알려주고 갔나보다
저녁을 하며 와인을 한 잔한다는게 두 잔이 되고 한 병을 다 비웠다
저녁과 술기운 때문이었을까?
잠자리에 누워 책을 읽으며 자연스레 잠에 들고는 했었던 것이 1시가 넘어도 잠을 이루기 어렵다
마지막으로 시계를 본게 2시넘어서니까 그 뒤 언젠가 잠이 든 듯
잘 먹지 않던 저녁을 좀 과하게 먹어서 인지 아침 생각이 없어 나오려니,
아들이 뭔가를 내민다
아침 안먹고 간다해서 볶음밥으로 도시락을 쌓단다
많이 컸구만
장가가면 아내에게 사랑받겠어 ^^
짧은 잠속에서도 꿈을 꾸었다
추운 거리에 노숙자마냥 혼자 떠는 나를 누군가 푸근하게 안아준다
뒤를 돌아보려해도 몸이 말을 안들어 누군지를 알 수 없지만,
체온이 느껴졌다, 따스함과 내 등뒤를 어루만져주는 포근함
이유도 없이, 모란을 좋아한다
이유도 없이, 모란을 떠올리면 색이 바랜 시간의 흔적을 담은 보라색이 떠오르고
이유도 없이, 모란의 보라색은 나이든 누이의 푸근함을 느끼게 하여준다
내겐 누이도 없건만
충남 예산의 추사 김정호의 생가를 가면 그 담밖의 울타리를 따라 모란이 피고는 했었다
지금도 남아 있으려나
모란이 필 때면 추사의 생가를 찾아 그 앞 돌계단에 앉아 아무 생각없이 바라만 보곤 했었는대
생각해보니, 마지막으로 간것도 20여년이 넘어버린 시간의 저 쪽이 되 버렸다
언제 이리 시간이 흘러가 버린걸까?
퇴근길 e-book을 들으며 블루투스로 맞춰논 세팅이 풀린 것인지
아침 출근길 차 라디오에 낯설은 주파수가 뜨면서
노래가 흘러나온다
'.......
돌아보면 흔적도 없는
인생길은 빈 술잔
빈 지게만 덜렁 메고서
내 여기 서 있네
............
무슨 미련 남아 있겠니
빈 지게를 내려 놓고 취하고 싶다
술아 내 맘 알겠지'
진료실에 들어와 찾아보니 '빈지게', 남진의 노래라 한다
노래의 가사가 귀에 들어오면 나이듬의 또 한 증거라하는대, 가사가 귀가 아닌 맘속에 담겨 버림은 나이보다 더 한 시간들이 흘렀음을 말해주는걸까?
노래 가사의 앞부분은 상투적이다
' 바람속으로 걸어왔어요
지난날의 나의 청춘아
비틀거리며 걸어왔어요
지난 날의 사랑아
..........'
상투적인 가사이건만 맘에 담김이 스스로 생각해도 청승맞아진다
청춘, 사랑이란 단어
교실과 진료실에서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 덧 육십을 바라보고, 몸은 주인에게 그 간의 돌보지 않음에 대해 투정을 넘어 경고를 보내는 나이가 되 버렸다. 내게 청춘이란 시절이 있었던가? 내게 사랑이란 설레임이 언제가 마지막이었더라? 뭘 얻으려 그렇게 가사가 말해주 듯이 바람속을 걸어왔었을까?
꿈에서 깨고 나니, 일어나기가 싫어지면서 오히려 몸이 추워진 아침
등뒤에 혹여라도 남아있나 꿈속의 푸근했던 체온을 더 느껴보려 하지만, 이미 다 식어버렸다.
만성적으로 내 안에 함께 하는 두통
꿈속의 포근함을 잃어서일까?
몸살기운으로 시작하는 오늘 하루 아침이다
진료실 턴테이블에 LP판 하나를 올리고, 친구가 보내준 이병률 시인의 책을 손에 잡아보면서 하루를 시작한다.
오늘 하루는 길 듯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