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어느 쪽에서 보는가에 따라 평이 다름은 당연한 것이겠지
우리가 존경하는 안중근의사도 일본인이 본다면 테러리스트가 될 것이고
영국의 영웅 넬슨도 프랑스에서 볼 때는 눈의 가시가 될 것이고
영화 나폴레옹을 보며 생각하게 된 것 하나는
다른 나라의 누군가를 함부로 스토리화하는 것은 위험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영화 서울의 봄이 잘 만들어졌다 느껴지는 이유는 감독은 평을 하지 않고, 그 시간들을 따라 가기만 할 뿐 평은 이를 보는 관객에게 맞겨두고 있다. 선도 악도 나누지 않았다.
영화 나폴레옹을 보는 프랑스인들은 영국을 어찌 생각할까?
안중근의사의 이야기를 뮤지컬화한 영웅은 매년 반복되면서도 또 보게 되고, 이젠 그 스토리, 노래도 외울 정도가 되었음에도 눈물짓는 건 한국인이지 때문일 것이다
만약 안중근의사의 일대기를 일본인의 시선으로 극을 만든다면 우리는 분노를 하게 되겠지
사람의 정서는 어찌 보면 박스 내에 갇혀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30만대군을 살수에서 수장시킨 을지문덕은 우리에겐 위인이겠지만,
수나라 백성으로 태어나 전쟁에 끌려온 30만명의 생명과 그에 관계된 가족들로서는 아프고 또 아픈 이야기가 되는 게, 사회 속 관계가 될 듯하다. 철학이 있고, 문학이 생기는 이유도 아마 이러한 양면성 때문이겠지.
박스 속에 갇히지 않은 정서가 의미가 있을까도 싶다.
어떠한 상황은 이도 옳고 저도 옳다가 맞을지 몰라도, 태어나고 살아가는 공간은 내 선택의 것이 아니기에 가지게 되는 정서는 그 공간의 박스 속에 들어가 있는 게 옳은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광복절에 굳이 일장기를 걸고 자신을 말하려는 자가 불현듯 생각나 글을 쓰게 된다
옳고 그름을 떠나 박스가 있는 공간은 정서가 맞는 곳에 놓여져 야할 것이기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