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입장에서는 겨울방학의 시작이 한 해의 끝이라는 느낌이지만 사실 진정한 끝은 졸업(1, 2학년은 종업)이다. 선생들은 방학을 해도 생활기록부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실물의 아이들은 집으로 보내더라도 문자로 아이들은 계속 대면하고 있다. 졸업식을 하고 나서야 아 이제 진짜 한 해가 끝이구나 하는 느낌이 온다. 생활기록부는 아이들 졸업 후에도 끈덕지게 들러붙지만 졸업장 주고 상 주고 졸업 앨범 주고 하는 행사가 한 해의 끝이라고 알려주는 것 같다.
졸업식 준비는 생각보다 만만치 않다. 한 학교의 3분의 1을 내보내는 일인 만큼 그 반대인 입학식과 함께 학교의 아주 큰 행사 중 하나다. 일단 많은 수의 학부형들이 오고, 학생들이 받아야 할 것이 아주 많으며, 많은 사람에게 의미 있는 날로 기억된다. 행정적으로도 3학년 전 학생들의 학적이 바뀌면서 학교를 떠나는 일이니 많은 부서가 동원된다. 그리고 1, 2학년은 종업식을 같이 하는 경우가 많아 그것까지 같이 준비하려면 거의 모든 교사가 바빠진다.
학교를 좋아했든 그렇지 않든 학생에게 졸업은 뭔가 특별한가 보다. 학교 생활엔 영 취미가 없어 보이던 아이도 졸업식 날에는 옷도 좀 단정히 입고 의젓하고 점잖은 태도로 한구석에 서 있다. 그런 모습이 좀 웃기기도 한데 어른이 되려고 저러나 싶어 함부로 웃으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아쉬움이 가득한 얼굴을 하고 있는 아이도 있고. 그래서 그런지 대체로 가볍고 즐거운 분위기인데 묵직함을 느낄 때도 간혹 있다.
3학년 담임은 12년의 마지막을 함께 한 사이이니 감회가 드는 것은 당연한데, 1, 2학년 때 아이들을 잠깐 스쳐갔던 선생으로서 졸업을 보는 일은 색다른 부분이 있다. 축하해 주고 싶은 마음은 있는데 일단 분위기가 분주하고, 입시에 지대한 도움을 주었을 3학년 담임 선생님과 아이들의 시간을 방해하는 것 같아 다가가기가 어렵다. 한편으로는 내가 먼저 가서 축하해 줄 정도로 친밀한 아이가 있나 생각해 보면 그렇지도 않다. 그냥 학교를 벗어날 의식을 갖는 아이들 모습이 좋아서 그러는 것 같다. 괜히 끼고 싶은 기분.
그래도 선생이라고 졸업식 후 한두 명씩 찾아와 사진이라도 한 장 찍자고 하면 매우매우 기쁘다. 전 해나 전전해에 담임을 했던 아이라면 당연히 반갑고, 내 수업에서 약간이라도 뭔가 느껴 사진으로 기념하고 싶다는 아이가 오면 뿌듯하다. 대체로 힘들지만 그래도 이런 일이 있어서 선생이라는 일이 재미가 있다. 다만 사진을 찍으면 나도 갖고 싶은데 자기들 폰으로 찍어서 가져가 버리니 그건 좀 아쉽다. 왜 그 때는 나에게도 사진을 보내달라는 말이 기억이 안 날까.
나에게 찾아오는 아이가 아니라도 졸업식을 마치고 내려 가는 아이들을 보면 작년, 재작년 생각이 나면서 응원해주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나를 화나게 했던 기억이 안 나는 건 아니지만, 졸업식 자체가 주는 기운 때문인지 아니면 아이들의 밝은 표정 때문인지 지나가는 개선장군 바라보듯 박수를 쳐 주고 싶다. 물론 이상해 보일까봐 실제로 치지는 않는다. 괜히 잘 가라, 수고했다는 말만 반복할 뿐.
올해는 시국이 이래서 졸업식이 12월에, 그것도 크리스마스 전에 열렸다. 급하게 준비해서 마무리한 느낌이라 아쉬움이 컸다. 식을 방송으로 간소화해서 진행한 점도 그랬다. 하지만 수고했다, 잘가라 하는 말은 올해도 할 수 있었고, 날 굳이 찾아와 사진을 찍고 간 아이도 있어 그래도 마음이 좀 낫다. 졸업생들이 꽃도 들고 있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