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깔끔하게 Sep 06. 2023

복도

"이 Tlqkf련아ㅏㅏㅏㅏㅏㅏㅏ!!!!!!"

오늘도 복도에 욕이 난무한다. 이젠 그러려니 한다. 요즘은 예전 세대보다 뭔가 더 자신있게 욕을 내지르는 것 같지만 기분 탓이겠지. 나가서 한 마디 해야 하나 고민한다. 그 사이에 두두두두두 하고 쫓고 쫓기는 소리가 멀어진다. 한 마디는 할 수 없게 됐다. 사실 걔네들이 나 들으라고 한 소리를 아닐 거고 쉬는 시간 추격전에 필요한 추임새 같은 것이니 거기다 대고 뭐라 하기도 그렇다. 음 오늘은 7반 여학생이군, 정도로 하고 넘기는 수밖에.


복도는 만남의 광장이다. 삼삼오오 모여서 뭔가 이야기 하다가 다가가면 안녕하세요- 한다. 나도 안녕, 또는 안녕하세요 하고 다른 교무실에 갔다가 나오는데 또 안녕하세요- 한다. 나도 또 안녕하세요 하고 지나간다. 이렇게 10분 동안 인사만 수십 번이다. 안녕, 안녕하세요, 그래, 잘 지냈나, 응, 어, 으응~ 매번 바꿔서 인사를 해준다. 인사 많이 한다고 나쁠 건 없지만 30초 만에 또 인사하는 건 좀 그렇지 않니. 그것도 맨날 보는 사이에. 뭐 그래도 기분이 나쁘진 않다. 수업 시간엔 인사도 1대1로 하지 못하니까.


수업 시간에 보기 힘든 녀석이 복도에 서 있다. 일부러 시비를 걸어 본다. 여기서 뭐하냐- 그냥 친구 만나고 있어요. 오늘 몇 시에 왔냐- 오늘은 일찍 왔어요. 요새 살이 좀 찐 것 같다? 아니에요 그대로예요. 학교 좀 잘 나오라고 하고 싶은데 참는다. 본론을 말 못하니까 시답잖은 얘기만 한다. 이야기 끝엔 칭찬도 좀 섞는다. 그래도 오늘 일찍 오니까 좋으다. 내일 수업 시간에 보자! 물론 내일 본다는 보장은 없다. 그래도 복도에서라도 만났으니 다행이다.


복도는 썸의 공간이다. 남녀가 모여서 뭔가를 이야기하거나 장난을 치는데 뭔가 묘하다. 지나가다가 너희 사귀냐 하고 물으니 아니란다. 그래, 아니겠지. 아마 곧 아닌 게 아니게 되겠지만. 예상은 십중팔구는 맞아 들어간다. 그리고 길어야 한 학기 지나면 또 아니게 된다. 아니었다가 아닌 게 아니었다가 다시 아니게 되었으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거다.


복도는 교사끼리도 만남의 광장이다. 학교가 크면 자기 일 하느라 다른 사람이 출근하는지도 모르고 시간이 지나가 버리기 십상이다. 그래도 복도가 있어서 인사라도 하고 안면이라도 튼다. 친분이 조금 있다면 잠깐 가다가 서서 근황을 묻는다. 어찌 지내나요, 잘 지냅니다. 애는 잘 커요? 올해 학교 갔어요. 벌써요? 헐. 몇 달 뒤 회식 자리에서 만나서 반갑게 인사한다. 애는 잘 커요? 올해 학교 갔어요. 벌써요? 헐. 둘다 복도에서 만났던 거 까먹고 다시 이야기한다. 그만큼 바쁘고 정신이 없다.


복도는 매 시간 사람을 찾는다. 방송이 나온다. 김땡땡, 박땡땡 교무실로 공 갖고 오세요. 이건 복도에서 공 갖고 놀다가 연행되어 가는 거다. 또 방송이 나온다. 정땡땡 교무실로 오세요. 이건 어제 야자를 튀었다가 연행되어 가는 거다. 교내에 계신 이땡땡 선생님 교장실로 오세요. 이건 회의를 까먹은 거다. 제일 많이 들리는 방송은 각 반 반장 교무실로 오세요다. 공지 사항이 시간마다 전달된다. 반장들은 매 시간 불려 다니느라 바쁘다. 추격전도 해야 되고 안녕하세요도 해야 되고 연애도 해야 되는데.


복도는 통로다. 하지만 통로로만 쓰는 건 아니다. 그래서 숨통이 틘다.

매거진의 이전글 동기유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