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에게 학교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주로 교실이겠지만 교무실도 그에 못지 않게 학교를 대표하는 공간이다. 교사들이 업무 보는 공간 정도로 생각하기 쉽지만 상담 공간이자 민원대이기도 해서 학생들도 교사 못지 않게 많이 들락거리는 곳이다. (아마 문지방이 닳은 정도로 순위를 매긴다면 교무실이 1등일 거다.) 아마 연식이 좀 되는 분들은 교사들이 다 모여 있는 큰 교무실을 떠올리겠지만 큰 학교는 달랑 1명만 있는 곳부터 많은 인원이 있는 곳까지 다양한 크기의 교무실이 존재한다. 그래서 1학년 학생들은 선생님 한 번 찾으려다가 온 학교를 헤매는 일도 왕왕 있다.
교무실에 들어가 있는 물품은 대충 비슷할 것이라 본다. 1인당 책상 하나에 컴퓨터 한 대, 한두 사람이 같이 쓰는 캐비넷,각 부서의 일정이나 중요 내용 등을 적어놓는 화이트 보드(아직 백묵 칠판을 쓰는 곳이 있나 모르겠다.), 소파, 테이블 등이 기본적으로 들어가 있다. 입구에는출석부와 나눠주어야 할 가정통신문이 꽂혀 있다. 테이블에는 간혹 간식거리가 올라와 있어서 학생들이 들어와 군침을 흘리곤 한다. 내가 근무하면서 본 교무실을 떠올리면서 학생 때 기억을 더듬는데 별반 달라진 건 없는 것 같다. 예전엔 뒤로 툭 튀어나와 있는 모니터가 책상을 차지하고 있었다는 것만 빼면.
당연한 소리지만 교무실은 업무 공간이다. 교무부, 교육과정부, 연구부 등 각자 맞는 일을 열심히 한다. 일 년 내내 일이 몰아치는 자리도, 띵가띵가 놀 수 있는 자리도 없다. 대체로는 모든 곳이 분주한 느낌이다. 보고해야 할 문서는 제출 기한이 있어서 바쁘고, 기안문 하나 쓰는 것도 수업이 없을 때 띄엄띄엄 해야 해서 시간이 있을 때 바짝 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 수업은 교실에 들어가기만 하면 뚝딱 되는 것이 아니라서 나름 준비를 해야 한다. 자료도 찾아야 하고 프레젠테이션 파일도 만들어야 한다. 하다못해 교과서 어디를 밑줄 그을 것인지라도 생각해 놔야 한다. 수업-수업-행정-행정-점심-수업준비-수업-수업-수업준비 이러다 급하게 퇴근하는 날이 많다. 아, 중간 중간 회의나 연수도 있다. 이러다 뭔가 하나 펑크나면 집에 싸들고 가는 거다. 주로 수업 준비가 뒷전으로 밀리다가 집까지 따라온다.
교무실은 정보 교환의 공간이기도 하다. 학교 소식, 학생 소식이 공유된다. 위에서 내려오는 지침도 공유된다. 정보를 나누다 감정도 공유한다. 엄마 아빠끼리는 육아 정보도 공유하고, 생활 용품이나 음식이 좋은 것이 있다며 알려주다가 공동구매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분주하다면서 이런 얘기는 언제 하냐고? 시험 공부할 때 하는 잡담이 더 재미있듯이 일하다 짬내서 하는 이야기가 더 재미있는 법이다. 각자 일하다 의자만 빙글 돌려 이야기하다가 다시 빙글 돌려 일한다. 출출한 시간에는 테이블에 모여 잠깐 뭘 나눠 먹기도 한다. 학생들이 군침을 흘리는 간식거리는 이때 나온다.
쉬는 시간마다 학생들이 찾아 온다. 이유는 다양하긴 한데 병자들의 지분이 꽤 크다. 병조퇴 허락을 받으려는 자들은 보호자 확인 후 집에 보낸다. 담임들은 조퇴증에 사인한다고 쉬는 시간을 많이 보낸다. 인기스타의 기분이 이런 것일까. 담임이 아닌 사람들은 사정이 좀 낫다. 그래도 학생들이 많은 학교는 각기 사정이 많아서 각 부서에 이런 저런 일로 많이 찾아 온다. 가끔, 아주 가끔 학습에 열의를 가지고 질문을 하러 오는 학생들도 있다! 이럴 땐 기뻐하며 질문에 답한다. 많이 기쁠 때는 교무실에 있는 간식도 쥐어 준다. 학습 의욕을 고취시켜야 한다! (하지만 잘 안 된다.)
교무실은 상담과 훈육의 공간이기도 하다. 몸과 마음이 많이 지친 학생들은 위클래스로 보내고, 회복 가능한 정도의 학생들은 담임이나 친밀한 교사가 상담을 한다. 웬만하면 열심히 들어주고 조언 몇 마디 해주면 혼자 거뜬히 이겨 낸다. 상담은 할미손약손 정도의 효과가 있다. 며칠 있다 보면 시름시름 앓던 아이가 아무렇지 않게 돌아다니고 있다. 참 다행이다. 가끔 거짓말을 하거나 약소한 잘못을 한 학생들은 훈육이 필요하다. 교사들은 자기 성격에 맞게 각자의 방식대로 혼을 낸다. 학생들은 혼나면서 약간, 아주 약간 기가 죽지만, 혼나는 걸 본 다른 친구의 놀림에 기가 살아난다. 그래서 상담과 훈육은 하고 나도 표가 별로 남지 않는다.
학창 시절 교무실은 아주 부러운 느낌이 드는 장소였다. 선생님들이 직장인 같아 보였고, 자유로워 보였기 때문이다. 그 때 기억을 떠올리고 보니 교무실이 좀 좋아 보인다. 할 일이 산더미만큼 남았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