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는 주로 수업을 하는 곳이다. 고등학교는 더욱 그렇다. 생활습관이나 태도를 가르치는 데 힘을 많이 들이지 않아도 되는 대신에 좀 더 깊고 어려운 내용을 가르친다. (인문계 고등학교 외에는 가보지 않아서 다른 곳은 잘 모르지만 비슷하지 않을까 한다.) 하지만 수업과 공부 외에도 학생과 교사를 이어주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상담이다.
상담하면 거창하게 들리겠지만 사실은 별 것 없기도 하다. 복도에서 만나서 그날의 안부를 묻는 것도 일종의 상담이다. 오늘은 안색이 안 좋은데 무슨 일 있냐, 요새 수업 시간에 왜 자꾸 자냐 등등. 별 것 아닌 몇 초 간의 스몰토킹도 관심으로 받아들이는지 관계를 좋게 유지할 수 있다. 남학생의 경우엔 축구나 야구 같이 스포츠로 이야기를 트면 복도 한가운데에서 자기 이야기를 풀어놓기도 한다. 이 방식은 담임들보단 비담임들이 주로 잘 활용하는 편이다. 부모가 자식에게 안부를 묻기보다 당부할 일이 많듯이 담임은 안부보다 당부할 일이 많다.
그리고 학기 초에 하는 정기 상담(?). 담임이 반 학생들을 알기 위한 상담이다. 자기 이야기를 편하게 다 풀어놓는 아이도 있고 최대한 노출하지 않으려는 아이도 있다. 대부분은 고맙게도 경계심 없이 자기 이야기를 적당한 수준에서 풀어놓는다. 이 시간은 안그래도 바쁜 학기 초를 더 바쁘게 하지만 담임 입장에서는 꼭 필요한 시간이다. 아이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을 뿐더러 여기서 대화의 물꼬를 잘 터놔야 뒤에 가서도 더 쉽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담임들은 더 무거운 상담도 한다. 반 아이들의 환경과 성격을 꿰고 있기 때문에 아이들의 변화를 빠르게 알아차린다. 상담을 요청해 오는 경우 무슨 일이 있다는 뜻이므로 최대한 빨리 상담 시간을 잡는다. 상담 요청이 없더라도 표정이 우울해 보이거나 화가 나 보이거나 불안해 보이면 따로 불러 무슨 일이 있는지 물어본다. 조용한 공간에 둘이 따로 앉는 것만으로도 상황이 많이 나아진다. 따로 이야기를 한다는 것 자체로 안정을 주기 때문일까. 사실 아이에게 큰일이 생기더라도 교사가 해결해 줄 수 있는 일은 한정적이다. 그래도 표정을 먼저 읽어주고 마주 앉아서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마음을 잠깐 쉬게 할 수 있다.
아, 이거 나만 듣고 있어야 될 사이즈가 아닌데 싶은 경우가 간혹 있다. 아동학대나 아이가 심하게 불안정해 보일 때다. 그럴 때는 잘 이야기해서 위클래스로 보낸다. 거기엔 전문 상담 선생님이 계셔서 나보다 좀 더 전문적으로 일이 처리된다. 상담 진행 후 처리 사항은 공유한다. 물론 위클래스 선생님과 아이 사이의 이야기는 비밀이지만 나도 한 번 상담을 했기 때문에 대충 어떤 이야기가 오갔는지 짐작할 수 있다. 필요하다면 외부 기관의 도움도 받지만 이런 일은 없는 것이 좋다.
사실 상담은 학교에 적응을 못 하고 소위 사고를 치고 다니는 아이들과 가장 많이 한다. 나름 마음에 상처들이 있어 사고를 치는 거라 단순히 혼만 내고 끝낼 수 없는 경우가 많다. 담임도 애증의 마음이 솟아난다. 지각에 결석에 흡연에 음주에 폭행에 무면허운전에 하여튼 미운 행동 때문에 화가 솟구치기도 하지만 또 나한테 와서 이러저러하다고 사정을 이야기하고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면 또 마음이 약해진다. 그렇게 봐주다가 또 사고를 쳐서 다른 교사한테 괜히 눈치가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다른 교사들도 담임의 안간힘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걸 다 안다. 그렇다고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이 마땅한 것도 아니다.
아, 진로 상담도 빼먹을 수 없지. 수시 모집 전에 이루어지는 진로 상담 기간은 매우 진지하고 치열하다. 적성과 점수와 호감도를 모두 고려해서 대학과 학과를 결정해야 하기 때문에 담임과 학생의 대화가 몇 번에 걸쳐 이루어진다. 요즘은 대학 가기가 좀 쉬워져서 상담도 좀 수월해졌다. 프로그램도 잘 되어 있고. 하지만 상위권 대학은 여전히 경쟁이 치열해 담임과 학생이 신중하게 회의(?)를 해서 원서를 넣는다. 이 상담 기간은 원서 접수 기간이 끝나면 비로소 끝난다. 가끔 상담을 실컷 했는데 학생이 완전 다르게 원서를 넣는 경우도 있다. 허탈하고 좀 짜증도 나지만 어쩌겠나. 본인의 길이니 스스로 결정하도록 해야 한다.
적다 보니 상담이 아주 무거운 일인 것 같지만 그렇지 않기도 하다. 담임이 아닌 지금은 찾아 오는 아이들을 편하게 대해주려고 한다. 테이블 앞에 앉으라고 하곤 별로 관심없는 척을 한다. 그러면 자기들끼리 떠들다 나에게 슬쩍 이야기를 꺼낸다. 좋아하는 남자애가 마음을 안 받아주고, 공부가 힘들고, 아침에 엄마가 자기한테 험한 말을 했고, 친구랑 싸웠고 각종 이야기를 꺼내다가 종이 치면 후다닥 간다. 난 그저 웃고만 있었지만 상담을 한 거다. 상담은 이렇게 어렵기도, 쉽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