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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만밤 Sep 10. 2021

적당히 흐물텅거리면 뭐 어때, 서로 좀 봐주면서 삽시다

김원영,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열심히 최선을 다해 노련하지 않겠습니다.


                                90페이지, <내 장애에 노련한 사람이 어딨나요?> 서문 재인용.



회사에서 다른 사람과 메신저로 대화할 때면 ‘적당히 용건만 전달하면서도 적당히 친절하며 을처럼 보이지 않는 말씨’를 구사하려고 애쓴다. 일 잘하는 남자 대리 말씨, 그러니까 ‘노련한 말씨’말이다. (물론 여전히 나는 ‘앗 넵 확인하겠습니다!’ ‘넵넵 감사합니다 ^^!!!’ 를 달고 산다.)


노련함은 어떤 상황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며 획득한 대응 기술이지만, 능숙함과는 결이 다르다. 노련함은 작업에 숙달된 능숙함을 말하기도 하지만 미묘한 상황에서 내가 말하고자 하는 정치적 의도를 전달해내는 것을 포함하기에 상대가 나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끊임없이 관찰해야 한다. 처음 노련함을 시도한 후에는 승모근이 뭉치고 한숨이 깊게 나오지만, 점점 자연히 해낼 수 있게 된다. 술 마시지 않는 사람은 술자리의 입담꾼이 되고, 승진하는 여성은 어떤 종류의 남성성을 체화한다.


친절하고 안전한 세상에서는 적당히 흐물텅거려도 살아갈 수 있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에선 노련해야 한다. 충분한 보호를 받지 못하는 아이들이 일찍 철들고, 장애인은 자신의 몸을 이용하고 사람들의 시선을 다루는 데 노련해진다. 눈치를 챙기고 '낄끼빠빠'하며, 집단의 속도를 맞추거나 누구도 불편하게 만들지 않으면서 자리를 피하는 기술을 익힌다. 그래서 ‘최선을 다해서 노련하지 않겠’다는 장애인권동아리 턴투에이블의 선언이 반갑다. 없는 사람처럼 굴기 위해 노력하지 않겠다, 너희 속도를 맞추기 위해 노련하지 않겠다는 외침이다.

* 낄끼빠빠 : 낄 데 끼고 빠질 때 빠지라는 뜻의 줄임말


우리는 일등으로 달려가는 사람의 이야기에는 집중했지만, 뒤쳐진 무리에겐 눈길을 힐끔댈 뿐이었다. “야 또 ‘장애인들이’ 그랬대, ‘여자들이’ 그랬대, ‘게이들이’ 그랬대”... 속에서 '그랬던' 이들은 무리로 치환되고, 사건 속에서 발견되는 이야기는 무리의 특성을 더할망정 개인의 서사를 만들지 못한다. 법 역시 이들을 묶음으로 취급하고, 개인의 이야기보다는 편리한 등급의 분류와 적정한 절차로 이들을 ‘돕고자’ 한다.


김원영은 그들을 개인으로 나누어 들여다보라 말한다. 누구든 자기 이야기를 풀어낼 장이 마련된다면 자신이 겪어낸 경험(혹은 상상)을 씨실과 날실로 엮은 삶의 이야기를 들려줄 것이라고 말한다. 이때 듣는 이가 그 삶의 저자가 상대임을 인정하는 것은 그를 존엄한 존재로 대우하는 것이고, 말하는 이가 자신의 삶의 서사를 일관되게 가져가고자 힘쓰는 것은 그 서사 속의 자아를 실재로 만드는 일이다. 그러면서 밀도 있고 구체적인 삶의 저자가 된다.


무리에서 가급적 튀지 않고, 줄을 선다면 가급적 앞쪽에 서기 위해 서두르고, 노련함으로 무장해 험한 세상을 살아가기에도 바쁘다. 그러나 종종 멈춰서고, 늦거나 튀는 이에게 ‘눈새’라고 말하지 않으며, 관심의 바깥으로 밀어냈던 다른 이들의 고유한 이야기에 귀기울이는 일이 누군가를 존중하고 존엄하게 여기는 일의 시작이라는 생각이 든다.

*눈새 : '눈치없는 새끼'의 준말. 눈치 없는 사람을 부정적으로 이른다.


전신 무모증인 사람, 장애인, 수용소를 겪은 사람... 우리가 잠시 멈춰 다른 삶의 이야기를 듣고 그 삶에 대해 고려하는 것도 하나의 시작일 것이다. 함께 고민했기에 행동할 수 있는 ‘예의 바른 무관심, 섬세한 도움의 손길, 무시와 냉대 속에 혼자 있는 사람을 발견하고 고개 숙여 말을 거는 순간, 조금 더 긴 시간을 들여 상대방의 ‘초상화’를 그려보려는 미적/정치적 실천’이 삶에서 드러나고, 우리 책장에 꽃힌 책의 권수만큼이나 다양한 삶의 이야기를 수용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어색한 상황에서든, 가까운 상황에서든. 그렇게 존엄이 순환되고, 누구도 실격당했다 느끼지 않고 적당히 흐물텅거려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




김원영 저,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사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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