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이언 헤어, 버네사 우즈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친화력은 자기가축화(self-domestication)를 통해서 진화했다.
수 세대에 걸친 가축화는, 기존의 통념과는 달리, 지능을 쇠퇴시키지 않으면서 친화력을 향상시킨다. (중략) 우리가 연구에서 발견한 것은 조건이 일정하다면 자기가축화가 타인과 협력하고 소통하는 능력도 향상시킨다는 점이다. 31p.
사람 아기는 생후 9개월에서 12개월 무렵에 겨우 걸음마를 뗀다. 이렇게 달리지도 못하는 시기에, 타인의 마음에 대해서 생각하기 시작하는데, 시작은 단순하지만 갈수록 복합적인 사고가 가능해진다. (중략) 이렇게 이른 시기에 아직 덜 발달된 뇌로도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는 사회적 기술이 우리 종에게 막대한 우위를 주었다. 어린 나이부터 타인을 이해하는 능력을 갖춰, 수많은 세대를 거치면서 쌓여온 지식을 물려받을 수 있다는 점도 우리 종의 생존에 비할 데 없는 우위를 준다. 151-153p.
호모 사피엔스가 많은 인간 종 중에서도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이유는 가장 뇌가 크고 똑똑해서가 아니라 가장 친화적인 종이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낯선 존재들과의 친교는 사회연결망을 강화했고, 그로부터 더 나은 기술을 얻어 더 많은 식량을 얻게 되고, 더 밀도있는 집단으로써 거주할 수 있게 되는 순환 고리가 생존의 핵심이었다.
사람 자기가축화 가설은 우리가 친화력을 지닌 동시에 잔인한 악행을 저지를 수 있는 잠재력도 지닌 종임을 설명해준다. 외부인을 비인간화하는 능력은 자신과 같은 집단 구성원으로 보이는 사람에게만 느끼는 친화력의 부산물이다. (중략) 우리에게는 우리와 다른 누군가가 위협으로 여겨질 때, 그들을 우리 정신의 신경망에서 제거할 능력도 있는 것이다. 연결감, 공감, 연민이 일어날 수 있던 곳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다정함, 협력,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우리 종 고유의 신경 메커니즘이 닫힐 때, 우리는 잔인한 악행을 저지를 수 있다. 226p.
친화력을 향상시키며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사람 종은, 동시에 외부 집단에게는 이해와 공감의 신경망의 전원을 꺼버리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비인간화, 즉 인간이 아니라고 느끼기 때문에 외부 집단의 아픔과 슬픔에 덜 공감하고, 유인원 같다는 둥 분명하게 선을 그어 분리한다. 인류를 고통에 빠지게 한 모든 전쟁들이 이런 비인간화에서 비롯되었다. 우리와 비슷하지 않으면 남이고, 당신이 아프든 말든 내 알 바 아닌 거다.
내 가족, 내 사람에게 다정하기는 비교적 쉬운 일이다. 그 울타리 밖을 벗어난 사람에게 울타리를 지키기 위해 어떻게 행동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먹을 것이 풍부하지 않던 인류가 내 공동체를 먹이고 지키기 위해 외부 집단을 배척한 것은 한편 당연한 것으로도 보인다. 반면, 오늘날 내 아이에게 한없이 친절하고 다정한 부모이지만 임대아파트 아이들을 단지 내 놀이터에서 몰아내고 싶은 아파트 거주자의 모습을 떠올려보면 다정함의 결여가 한정된 자원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사람이 가질 수 있는 다정함에도 총량이 있다면 '우리'에게 덜 다정해야만 외부 집단에게 나눠줄 다정함이 남는 것은 아닐까? 맞는 말이다. 타인을 다정히 대하는 일은 에너지가 드는 일이니까. 그렇지만 이 책에서 말하는 '다정함'이 헌신적인 다정함까지를 지칭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훨씬 넓은 의미로 '저기 바깥에도 우리와 같은 사람들이 있다'고 인식하고 인정하는 것, 그래서 그들을 협력적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인간으로 여기는 것, 그 정도의 무심한 정감도 포함한다고 느낀다.
그렇다면 오히려 '우리' 안에서 생기는 사랑을 몇 가닥만 틀어 바깥으로 내어줄 수 있지 않을까. 소중한 내 아이와 같은 아이가 저기 바깥에도 있다. 정처 없이 헤메던 젊은 날의 나와 같은 사람이 저기 난민으로 문을 두드리고 있다. 그렇게.
동물이 사람과 더 비슷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민자를 덜 비인간화하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사람과 동물의 분리 정도, 즉 사람과 동물의 거리감에 대한 인식이 사람 집단들 간의 거리감 인식과 완전한 상관관계를 보인 것이다. 293p.
우리가 사람과 동물 모두를 외부자로 여길 수도 있는 사람들과의 차이를 메울 방법을 찾는다면, 개와의 우정이 가장 강력하고 현실적으로 가장 가능성 높은 방법일지도 모르겠다. 개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그들을 생각하고 사랑하고 아픔을 느낄 능력에 의심을 품지 않을 것이다. 개에게서 사랑을 받아본 사람이라면 그 사랑이 다른 사랑만 못하다는 생각은 결코 들지 않았을 것이다. 299p.
사람이 접촉을 통해 다른 집단과의 친화력을 회복할 수 있다는 소망의 소식이다. 외부인과 한 교실에서 수업을 듣는 것으로 그 집단 전체에 대한 적대감이 줄어들고 친화력이 커진다고 한다. 심지어 동물과의 거리감이 적다고 느끼는 사람은 외부 사람집단에 대해서도 가깝게 느낀다고 한다. 동물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본능적으로 호감을 느끼는 이유도, 동물을 발로 걷어차는 사람에게 있던 호감도 빠르게 식는 이유도 같지 않을까. 선택적으로 발현되는 다정함은 나에게도 언제 싸늘해질지 모른다.
그래서 이 책을 읽고 인간이 다정하다 느꼈냐 하면, 아니다.
그래도 이 책은 경쟁에서의 승리가 유일한 생존 방법인 것 같은 현대사회에서 사실 그게 전부는 아닐 수도 있다고 말한다. 현생 인류는 사실 친화력을 무기로 더 강하고 두터운 공동체를 만들어 생존해 왔다고. 우리도 적대감을 낮추고 다정한 선택을 해 보자고.
살기 위해 다정하자고 말하는 건 좀 웃기지만,
다정한 삶을 살기 위해 다정한 선택을 해보자고, 그게 멍청한 짓은 아니라고는 이제 말할 수 있다.
브라이언 헤어·버네사 우즈 저, 이민아 옮김, 박한선 감수,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디플롯
(원제 : Survival of the Friendli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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