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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어째서?

그럴 수밖에 없으니까.

결혼을 결심했다는 말을 하면, 주변에서 놀라워하며 축하를 해준다. 더불어 새어나오는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질문한다.

"왜 그 사람이야? 어째서 결혼을 결심하게 됐어?"

결혼이 인생에서 생각 이상으로 중요한 이벤트기에, 배우자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서 사람들은 궁금해한다. 그리고 그와 그녀는 그 질문에 대해서 어깨를 으쓱해하면서 대답할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었으니까."

대답을 들은 사람들은 기대를 져버리는 심플한 대답에 그와 그녀를 더 독촉한다. 속도위반으로 임신한 것도 아닌데, 왜 그럴 수밖에 없다는 말인지 무슨 의미냐며 캐묻는다.


이 이야기는 단순한 러브스토리가 아니다. 성장 에세이다.





그녀는 그를 만나기 전에 이기적인 사람이었다. 그녀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은 그녀 자신이었다. 연애를 하면서 절대 손해보기 싫어했으며, 상대방보다 내 사랑의 크기가 더 큰 것은 자존심 상하는 일이라 여겼다. 머릿속으로는 온갖 계산을 하면서 나의 가치와 상대방의 가치를 비교했고, 주변에서 얘기하는 온갖 이야기에 귀 기울이느라 정작 소중한 사람이 어떻게 느끼고 어떻게 상처 받는지 보지 못했다. 그녀는 어렸고, 어리석은 행동을 했으며, 그 결과 이별을 했다. 그녀는 헤어지고 나서야 얼마나 자신이 바보 같았는지 깨달았다. 남들이 지나가면서 하는 '남자는 이 정도는 해줘야 해, 연애는 저래야해, 그 정도는 기본이야' 같은 무의미한 말들을 자신의 기준으로 삼다니, 최악이다.


그녀는 뼈아프게 자신의 미성숙함과 유치함을 후회했지만, 이미 식은 사랑을 되돌릴 수는 없었다. 사랑은 타이밍이다. 타이밍을 놓치면 잡을 수 없다. 그녀는 선택에 있어 다른 사람 말에 휘둘리지 말고, 자신만의 기준을 세워야 하며, 그걸 바탕으로 선택해야 함을 배웠다. 뼈아픈 가르침이다. 가슴에 피가 철철 흘러내린다. 후회를 할 거면 제대로 해야 한다. 그래야 다음에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다. 그녀는 지난 연애를 통해 배운 내용을 각인한다. 다음 번에는 타이밍을 놓치지 않기 위해. 하지만 그녀는 가르침을 얻은 것과는 별개로 불안해했다. 다시는 전 남자친구처럼 나를 사랑해주는, 그 사람처럼 좋은 사람을 내가 만나지 못하면 어쩌지?


그리고 그녀는 라오스에서 그를 만났다. 그는 사랑의 크기를 계산하지도 비교하지도 않는다. 그는 자존심을 세우지도 않는다. 그저 그녀를 사랑할 뿐이었다. 그의 사랑은 아주 순수해서, 그녀에게도 순수가 전염되었다. 그녀는 어느 순간부터 그녀 자신보다 그를 더 사랑하게 되었다. 언제나 1순위는 그녀 자신이었는데, 어느 순간 그가 공동 1순위가 되더니, 0순위를 차지했다. 그의 사랑은 아주 순수해서, 그가 0순위가 되는 일은  피할 방도가 없는 사건이었다. 그녀는 이에 대해서 겸손하게 이렇게 표현한다. 누구라도 그와 깊게 사귀면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이제 그녀의 세상에선 그가 가장 소중하다. 그녀 자신보다 더.


그제서야 그녀는 자신이 '진짜' 사랑을 하고 있구나 느낀다. 원래 그녀는 영화 '이프 온리'를 보고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별로 공감도 안되고, 그냥 뻔한 절절한 사랑이야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 그녀는 그 영화를 볼 때마다 운다. 예쁘게 또르르 우는 게 아니라, 꺼이꺼이 울어버린다. 왜냐하면 택시 기사의 말처럼 그녀는 이제 계산하며 사랑하지 않고, 그가 옆에 있다는 사실 자체에 감사하기 때문이다. 그녀는 그에게서 사랑하는 법과 사랑받는 법을 배웠다. 그래서 그녀는 이제 '진짜' 사랑을 한다. 그가 충만하게 사랑해주었기 때문이다. 만약 자신이 '진짜' 사랑을 이해하고 있는 건지 궁금하다면 영화 '이프 온리'를 보자. 꺼이꺼이 운다면 '진짜'다.





그녀가 그와 결혼을 할 거라고 말하자, 주변에서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왜 28살에 그렇게 빨리 결혼을 하려고 하는지, 왜 장거리 연애에 이어서 주말 부부를 하려고 하는지, 어째서 그여야만 하는지 다들 궁금해했다. 그들의 눈에 그녀의 선택은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납득시키려고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가 그녀를 어떤 눈빛으로 보는지, 그가 그녀에게 어떤 말과 행동으로 믿음을 주는지, 그가 그녀에게 '진짜' 사랑을 어떻게 깨닫게 해주었는지 모른다. 절대 모를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그냥 이렇게 대답했다.

"그럴 수밖에 없어서요"

사실 이게 진실이기도 하다.


만약 그녀가 조금 더 어렸을 때 그를 만났더라면, 첫 이별의 깨달음이 없는 채로 만났더라면, 그러면 그녀는 유치하게 굴었을 것이고, 그에게 상처를 줬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지나가는 말들에 귀 기울이느라 그의 눈빛과 믿음과 사랑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사랑은 타이밍이다. 그녀가 그의 소중함을 깨달을 만큼 성숙했던 시기에 그들이 만났다. 그와 그녀는 타이밍을 놓치지 않았다. 그들은 서로가 있음에 감사하고 계산 없이 사랑했다. 그리고 그들은 그럴 수밖에 없어서 결혼을 했다. 도무지 다른 수가 없었다. '진짜' 사랑은 사랑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가 없다.


이 이야기는 단순한 러브스토리가 아니다. 성장 에세이다.




그는 그녀를 만나기 전에 평면으로 된 삶을 살았다. 집과 직장만을 맴돌며 납작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가 그녀를 만난 이후로 그의 세상은 조금씩 입체적으로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보다 생생해졌다. 그는 사는 게 너무 재밌어졌다. 그는 미래가 점점 기대 되었다. 그는 진하게 행복해졌다. 그는 여전히 그녀를 볼 때 심장이 두근거린다. 그녀가 세상에서 가장 귀여운 생물체를 보는 눈빛으로 그를 볼 때, 그녀가 그의 짧은 머리를 쓰다듬어줄 때면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에 소름이 돋는다. 그는 그녀에게 평생을 충성하는 대형견이다. '기꺼이' 스스로 원해서 그녀에게 충성하길 선택했다. 그녀는 실제로 가끔 그의 엉덩이에서 격하게 좌우로 움직이는 꼬리를 본다.




2020년 11월 7일 토요일, 어느 예식장에서 결혼식이 있었다. 신랑은 세상 모든 여자들이 그렇게 봐주길 바라는, 히스 레져같은 눈빛으로 'Can't take my eyes off you' 노래에 맞춰서 입장했다. 그는 꾸러기답게 귀엽게 춤을 추면서 걸어갔다. 잠시 뒤 신부가 영화 '러브액츄얼리' 메인 테마곡에 맞춰서 입장했다. 높은 구두로 조심조심 걸어 다다른 끝에는 신랑이 환하게 웃고 있었다. 신부는 신랑의 보조개 깊이를 보면서 신랑이 극히 행복한 상태임을 알아차린다. 신부 역시 극히 행복하다. 신부는 신랑과 눈을 맞추며 신랑의 손을 잡는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잡는다.


그날 하객으로 예식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은 느꼈다. 굳이 말로 물어볼 필요가 없었다. 그들이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에서 느낄 수 있었다. 이들은 서로를 정말 많이 사랑하는구나. 결혼할 수밖에 없었구나. 그녀는 그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서 사람들을 납득시킬 필요가 없었다. 그저 행복한 모습을 보여주는 걸로 충분하다. 사람들은 부부가 된 그들을 축복해주었다. 그녀와 라오스에 함께 갔던 그녀의 친구가 부케를 받았다. 그와 라오스에 함께 놀러갔던 그의 찐친구도, 눈빛이 초롱초롱한 사람을 만나라고 조언해주었던 그녀의 직장 선배도 흐뭇하게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객들마다 아주 유쾌하고 사랑스러운 결혼식이었다고, 보는 내가 다 행복해지는 그런 결혼식이었다고 얘기한다. 사실 이게 진실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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