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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너무 짧아

고작 100년밖에 못 사는데

사람은 모두 유한한 시간을 살아간다. 하지만 그걸 의식하고 살아가는 사람은 거의 없다. 모든 시와 철학과 고전의 메시지는 결국 죽음으로 귀결된다. 그걸 깨달은 사람은 많지 않다. 사람은 죽는다. 그래서 삶은 소중하다. 언젠가 끝이 있기에, 그 끝에 다다랐을 때 후회하지 않기 위해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고민해야 한다. 그 기적 같은 삶에서 죽음을 의식하는 것이 행복하게 사는 삶의 열쇠다. 그리고 죽음을 의식한다면, 결국 사랑이 가장 중요한 가치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거기까지 알아챈 사람은 극히 적다.


인생이 짧다는 걸 자각한 사람은 자신에게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그래서 매일매일 해야하는 일이 무엇인지 깨닫는다. 영화 '어바웃 타임'에서도, 책 '죽음의 수용소에서'에서도, 시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에서도, 웹툰 '죽음에 관하여'에서도, 애니메이션 'UP'에서도, 프리드리히 니체도 모두 같은 말을 하고 있다. 모든 사람은 예외 없이 죽는다. 그럼 어떻게 살아야 할까? 그는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았다. 그는 극히 적은 사람 중 한 명이다.





그는 그녀와 신혼생활을 하면서 행복이란 이런 것이구나 느꼈다. 행복을 느끼는 순간이 사람마다 다른데, 그에게는 소파에서 그녀에게 꾹꾹이를 당하는 순간이 그러하다. 그녀는 수족냉증을 앓고 있어서, 겨울에는 집에서도 늘 수면양말을 신고 있다. 거실에서 소파에 앉아 함께 TV를 볼 때면, 그녀는 보들보들한 수면양말을 신은 발로 그의 허벅지를 번갈아가며 지긋이 꾹꾹 누른다. 그녀가 없는 평일 동안 (그와 그녀는 주말부부다) 가장 그리운 것도 그녀의 꾹꾹이다. 그는 해마다 겨울이 되면 그녀를 위해 보들보들한 수면양말을 한 켤레씩 사줄 것이다. 평생.


그녀가 없는 평일 동안 두번째로 그리운 것은 그녀의 리액션이다. 그와 그녀는 저녁 설거지를 도전 골든벨 재방송을 보며 퀴즈 내기를 통해 정한다. 그녀는 대개 이기고 가끔 진다. 가끔 그녀가 지면 자존심 상해하며 입술을 쭉 내민다. 대개 그녀가 이기면 살랑살랑 어깨춤을 춘다. 그는 그런 사소한 작은 습관들을 사랑한다. 그들은 도전 골든벨 프로그램이 종영해서 아쉽다. 결혼식 퇴장곡으로 도전 골든벨 테마곡을 쓸 정도로 상징적인 프로그램인데, 구할 수 있는 모든 재방송분을 다 보면 어찌해야하나 걱정이다. 그는 도전 골든벨의 부활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 그녀는 그보다 더 간절히 바라고 있다. 설거지를 가끔만 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들은 넷플릭스로 함께 조선좀비드라마 '킹덤'을 시즌1부터 보기로 했다. 그녀는 원래 텍스트든 영상이든 엄청난 집중력을 발휘해서 본다. 3살짜리 아이가 뽀로로(혹은 코코몽 혹은 핑크퐁)를 바라보는 흡입력이다. 계속 무섭고 징그럽다고 말하면서도 쉬지도 않고 바로 다음화를 보자고 보챈다. 앉은 자리에서 6화 정도는 그냥 본다. 그가 이제 제발 쉬자고 화장실에 가려고 하면, 그녀가 쪼르르 따라와서 무서우니까 화장실 문은 닫지 말고 볼일을 보라고 요구한다. 그는 황당하지만 웃긴 요구에 빵 터진다. 그녀가 진심으로 하는 말이라서 더 웃겼다. 그녀는 그를 온 몸으로 웃게 한다. 그는 그녀의 이런 순수함을 사랑한다.


그는 죽을 때까지 그녀에게 꾹꾹이를 당하고, 그녀와 설거지 내기를 하면서, 그녀의 순수함에 온 몸으로 웃을 것이다. 그렇게 살기로 결정했다. 그게 그가 찾은 대답이다.




그는 그녀가 드라마 '멜로가 체질'을 보자고 해서 함께 정주행을 시작했다. 이미 1년 전에 본 드라마지만 그녀는 좋아하는 작품은 주기적으로 재탕하는 버릇이 있다. 매력적인 캐릭터들의 화려한 티키타카에 정신이 아득해지면서도 그는 그와 그녀의 케미도 만만치 않다고 느낀다. 우리도 저만큼 재밌게 노는데... 아니나 다를까 그녀는 어느샌가 상황극을 걸어오며 드라마 속 명대사를 재현하고 있다.

그녀가 묻는다. "사랑이 뭐예요?"

그가 대답한다. "좋은 거요"

그녀가 다시 묻는다. "연애는 뭐예요?"

그가 다시 대답한다. "무지 좋은 거요"

그녀가 만족한 듯이 씨익 웃는다. "그럼 해요 우리. 무지 좋은 거요"


언제 한번은, 지금은 기억도 나지 않는 사소한 이유로 그들 사이에 의견충돌이 있었다. 그녀는 기분이 상해서 입술을 쭉 내밀었다. 잠시 뒤 그가 사과하고 포옹하자, 그녀는 입술을 집어넣으며 말한다.

"고작 인간이 100년 밖에 못 사는데... 사랑할 시간도 부족한데... 싸울 시간도 아까워"

이 역시 '멜로가 체질'에 나오는 대사다. 화해하는 상황에서 통찰이 빛나는 대사다. 그와 그녀는 가끔씩 다투는 일이 생기면, 화해할 때마다 이 대사로 마무리한다. 함께 지내다가 느닷없이 나타나는 변수에 지지 말아야 한다. 시간 아깝다. 사랑을 해야 한다. 인생 너무 짧다.



연애 초반, 그가 사고가 나서 크게 다쳐 거동이 불편하게 되면 어떻게 할거냐고 그녀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그녀는 무슨 그런 극단적인 질문이 있냐며 회피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녀는 사랑은 변한다고, 영원할 거라는 약속은 무책임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그녀의 태도에 상처를 받았다. 그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그녀는 그를 버리겠구나 생각이 들었다. 그는 그녀가 다쳐도 그녀를 당연히 책임지고 영원히 옆에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에, 그렇게 대답해주지 않았던 그녀에게 섭섭했다. 우주만한 그의 사랑에 비해 그녀의 사랑이 상대적으로 작아보여서 속상했다. 하지만 그는 기다렸다. 기다렸더니 그녀의 마음이 천천히 커져가는 게 보였다.


얼마 전에, 그가 같은 질문을 그녀에게 한 적이 있었다. 그녀는 그가 다쳤다고 상상만 했는데도 눈물을 글썽이며 다치지 말라고 마음 아파했다. 그녀는 당연히 그 옆에 있을 거라며, 영원히 함께할 거라고 말했다. 그는 그녀가 변했음을 느꼈다. 아주 좋은 방향으로 그녀는 어느 순간 변해있었다. 그녀는 사랑을 믿게 되었다. 그가 그녀의 성장을 눈치챔과 동시에, 다른 각도에서 죽음으로 확장시켜 생각했다. 그는 언젠가 죽는다. 그녀보다 먼저 죽을 수도 있다. 그러면 그때까지 어떻게 살아야 후회가 없을까. 그녀가 먼저 죽을 수도 있다. 그러면 그때까지 어떻게 살아야 후회가 없을까. 인간은 모두 언젠가는 죽는다. 그러면 그때까지 어떻게 살아야 후회가 없을까.





삶은 절대 리셋해서 다시 시작할 수 없다. 삶에는 가역성이 없다. 시간을 되돌리는 것은 모두 판타지다. 만약에 그때 그랬더라면... 하고 생각하는 모든 가정은 무의미하다. 삶은 단 한번이고, 언젠가는 끝나기에 소중하다. 잘 살아내야 한다. 어떻게 살아야 죽는 순간에 후회가 없을까. 그는 사랑하며 살아가는 것으로 결론지었다. 그는 사랑을 마구 퍼부으며 살아갈 것이다. 그는 열렬히 사랑을 할 것이다. 그의 소중한 사람들에게 사랑을 표현하며 산다면, 그녀가 죽더라도 그의 사람인 누군가가 죽더라도 후회 되지 않을 것이다. 잘 살아냈다고 자부할 것이다.


인간이 살아봤자 고작 100년 남짓인데, 사랑하기에도 충분하지 않은 시간인데.

변수에 지지 말자. 다투고 기싸움하고 감정을 상하게 하는 모든 시간들이 너무 아깝다.

그냥 좋은 걸 하자. 무지 좋은 거.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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