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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달래 Nov 23. 2023

전생에 나는 개였을까?

에피소드 1. 빌리와의 추억





내가 태어난 곳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신문로 1가 90번지.

이곳을 11살 때 떠났다. 아빠가 군 예편 후 사업을 하시다가 가지고 있던 두 채의 집을 모두 날리고 가까운 친지인 고모네집으로 더부살이를 하게 된 것이다. 제2의 나의 고향은 전라도 완주라는 곳이었다. 


평생 군인이셨던 아빠는 그곳에서 열대 과일인 파인애플을 비닐하우스에서 재배한다 했을 때 주위에서는 만류를 했으나 지푸라기라도 잡으려는 심정으로 비닐하우스를 직접 만드시기 시작하셨을 것이다. 물론 처음 하는 농사는 빨갛고 노란 꽃만 한동안 피었다가 열매를 맺지 못하고 '열매를 맺으려나?'하는 희망을 가진 아빠와 우리 가족에게 실망만 주었다. 파인애플꽃은 난로까지 켜놓은 실내 기온에도 버티지 못하고 모두 허사가 되었다.

5일 장날에 아빠는 가지고 있던 남은 돈으로 소를 두 마리 사서 축사를 지으시고 개를 사다가 지키게 하셨다. 그때 우리 집으로 들어온 개가 빌리였다.





전북 완주 상관은 자갈이 내천 바닥을 가득 메운 너비 30미터의 넘실대는 큰 강과 긴 둑이 펼쳐져 있고 앞 동네에는 복숭아밭과 포도나무밭이 있어서 사시사철 아름다운 꽃과 향기가 있는 곳이었다. 뒷산에는 밤나무가 덮여있고 산과 산이 어깨동무를 하고 어우러져 있다.



봄에는 지천에 깔린 봄꽃과 고사리 종류의 봄나물을 엄마나 고모를 따라다니며 따보기도 하고 뱀을 만나 소스라치게 기겁을 하고 도망을 치기도 하고 여름이 오면 두무수라는 산 밑 바위에서 다이빙을 즐기며 돌멩이를 찾는 잠수 놀이를 하고 여름밤이 되면 반딧불을 손바닥에 놓고 꽁무니에서 나오는 반짝거리는 빛을 관찰하기도 했다.


그렇게 무더운 여름을 지냈고 가을엔 뒷산에서  토토톡 밤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면 

'낼 아침에 나가서 밤 주워야지~'하며 곤한 잠을 잤고 겨울에는 산위쪽에 쓰러져 있는 나무를 아빠가 정리해서 가지를 잡게 놓아주시면 그 소나무를 타고 집 아래까지 눈썰매를 타고 내려왔다. 거칠 것이 없었다.자연 눈썰매장이다.그 나무는 도끼로 토막내 잘라져 우리 집 장작더미에 쌓였고 겨울 땔감이 되었다 천이 얼면 스케이트 날을 덧댄 나무 썰매를 타고 겨울을 지쳤다. 우리 동네에서 스케이트를 날로 한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두꺼운 철사로 날을 댄 것보다 잘 달렸고 성능이 좋아 아이들의 부러움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았다.


밤이면 누구네 집 개인지 우렁차게 컹컹 짖어거나 발자국 소리만 나도 무서워서 집 밖에도 못 나가는 겁쟁이 서울깍쟁이 소녀였다.

그래도 우리 집을 지켜주는 빌리는 어느덧 자라서 내 허리만큼 컸고 밥을 갖다 주는 나와 가장 친한 동무가 되었다. 





빌리! 내가 지어준 이름이다.

가족이 되어버린 빌리가 어느새 새끼를 여럿 낳았다 옹기종기 눈도 못 뜬 빨간 덩어리들이 엄마품에서 서로 잘 나오는 젖을 차지하려고 엄마 아래쪽 젖으로 파고드는 모습을 보니 빌리가 불쌍하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했다. '더 맛있는 밥을 끓여줘야지' 하는 마음이 들었다.



새끼들이 쑥쑥 커서 두어 달쯤 지났을까 학교를 다녀와 빌리를 부르면 새끼들까지 우르르 나왔는데 아무리 집 근처를 돌아다녀도 새끼들은 안 보이고 빌리만 보인다. 

"빌리야 새끼들 어디 갔어?"


빌리는 새끼들이 모두 없어져서 자기도 찾고 있다는 표정으로 간절하게 무언의 눈빛을 보낸다.

하는 수없이 식구들도 찾아 나섰고 집 위의 산등성이도 올라가면서

 '여기까지 올라왔을까?'

나랑 같이 놀았던 양지바른 언덕 쪽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불러봐도 아이들이 보이지 않는다.


갑자기 집 뒤쪽에 골짜기를 하나 넘어까지 이웃 산으로 가봐야 하나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거기까지는 아이들과 가보지 않은 곳이라 설마.... 했던 곳이었다. 그때까지 빌리는 둑 넘어 딸기밭까지 뛰어다니며 찾고 있고 나는 두 시간이 넘게 산을 타고 다녔다.

"멍이야~ 흰 순아~ 똘아~ 개똥아~"를 목 터지게 부르며 말이다.





산 골짜기를 넘어  등선을 탔다 얼마나 올라갔을까? 찾기 시작한 지 두 세시간은 족히 지났던 것 같다.어디선가 낑낑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나뭇잎이 부딪치는 소리일까? 숨을 멈추고 소리 나는 곳으로 한 발 한 발 디뎠다. 혼자 올라가는 산이어서 조금 무섭기도 했지만 아직 해가 넘어가기 전이라 나는 용기를 내어 산속으로 들어갔다.


아이들은 이름 모를 남의 무덤 앞에 지네들끼리 추운지 몸을 비비며 낑낑거리고 있었다.

요놈들! 어떻게 여기까지 온 거야? 엄마가 얼마나 걱정했는데~

뒤에서 따라오던 빌리가 껑충껑충 한걸음에 달려와 제 아이들의 배며 입이며 귀를 핥았다. 나보다 빌리의 애타는 마음은 더했으리라.


무슨 냄새를 맡으러 이곳까지 왔느냐 이놈들아~ 몇 시간 동안 헤매던 나는 다리에 힘이 풀렸다.

빌리는 한 놈의 목덜미를 물어서 긴 혀로 핥아주고 주둥이, 귓구멍까지 샅샅이 하나하나 살펴보듯이 나머지 애들도 핥아주고 또 핥아주고..



엄마의 혀는 아이들을 안도하게 만들었다. 아이들은 배가 고픈지 엄마한테 달려들었고 나는 아이들에게 젖을 빨게 해주는 시간을 주고 가느다랗게 숨을 몰아쉬는 빌리의 모습을 지켜보았다.찾게 되어서 뿌듯했다.

강아지들을 안고 산을 내려오니 어둑어둑 해가 지고 있었다.




그날 일기에 이렇게 썼다

'나는 전생에 개였음이 틀림없어~!'


제 어미도 못 찾는 새끼들을 나는 무슨 텔레파시를 받아서 그 산까지 들어갔을까? 40여 년이 지난 오늘 나는 반려견 가족이 되어있고 나의쪼쪼를 볼 때마다 그때의 강아지를 잃어버리고 가까스로 찾았던 그날이 떠오른다.


길 잃은 강아지들이 나에게 

'나 좀 구해주세요 누나~~ 길을 잃었어요 집 떠나니 고생이에요' 하고 무언가를 보냈던 것이 틀림없다.

 

우린 먼 과거에 같은 종이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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