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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손 놓지 말아 주세요

친구의 마지막 소원

by 김달래

여행 후 감기에 걸려 시름시름 방바닥과 씨름을 하며 시간을 잡아먹고 있다.


톡이 울린다

깨톡깨톡!

역삼동 베프에게서 온 문자다.

"달래야, 순희가 이런 상태라고 기도해 주래~"




순희.

순희는 중학교 때 시골에서 같이 교회를 다녔던 아이다.

키도 크고 덩치도 좋고 목청이 좋아 성가대에서 소프라노를 맡아하던 언니 같은 아이다.

주말에는 산으로 들로 다니며 고사리도 뜯고 진달래꽃으로 화전도 해 먹고 솥단지 걸어놓고 밥 한다고 솥을 까맣게 태우면서도 호호 깔깔 놀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여고 졸업 후 뿔뿔이 흩어지고 대학 가고 하다 보니 30여 년간 연락이 끊겼다.


몇 년 전 다행히 밴드를 통해 연락이 닿아 만날 기회가 있었다.

시집을 구리 쪽으로 와서 딸 둘 키우고 있고 늦둥이를 낳아 이제 초등학교에 다닌다고 했다.

늦둥이 소식에

"언제 키운다니?" 하며

놀랍기도 하고 아직 젊게 사는 순희가 부럽기도 했다.

30여 년이 지났어도 얼굴이 그대로 있어 바로 알아보았고 세월이 무상함에 앞으로는 자주 소식을 전하기로 했다.


대학로에서 베프와 순희랑 만나 소극장에서 빨래를 보기로 했다.

공연시작 전 자리에 앉아 옆에 앉은 순희의 단정한 단발머리가 미용실에 다녀온 것처럼 이뻐서

"머리 이쁘다!"라고 말했다.

왜냐하면 나도 단발인데 머리가 반곱슬이라 감을 때마다 펴줘야 하고 숱이 줄어들면서 가라앉고 손질하기가 이만저만 힘든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친구는 내 귀에다 대고

"이거 가발이야."

"엥? 가발? 이쁘네 진짠 줄 알았네. 어디서 산거냐? "(머리 손질이 힘들어 가발을 미용으로 쓴 줄 알았다)

옆에 있던 베프가 눈을 찡긋하며 나에게 눈짓을 했다.

뭔가 있구나 싶어 입을 꾹 다물었다.


공연이 끝나고 식당에 들어갔다.


"달래야 궁금하지? 왜 가발을 썼는지. 나 암수술했어 지금 3년 차인데 잘 회복하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고 ,,,,"

라고 하며 가발 쓴 이유를 말했다.


요즘엔 암에 걸리면 무슨 전염병이라도 걸린 듯 아니면 말해봤자 소문만 무성해지고 동정의 눈빛을 보내서 그런지 주위에서 보면 쉬쉬 하는 것 같다.


"그랬구나 내가 뭘 모르고 미안해."

다행히 수술이 잘 되었다고 하니 다행이었고 낯빛도 건강해 보여 아픈 애 같지 않았다. 가발이지만 잘 어울린다고 다시 한번 말해 주었다.


그렇게 헤어지고 다시 그 친구가 잠적을 감추었다.

몇 번 전화를 했는데 받지 않았고

"내가 활동을 많이 하느라 바빠서 너희들끼리 만나라. 한가해지면 연락할게.."

라고 메세지를 우리에게 남겼다. 교회에서도 봉사활동도 다니고 늦둥이까지 케어해야하니

그 친구의 상황을 가히 짐작하는 우리는 연락 올 때까지 두자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5년이 흘렀다.


베프에게서 순희에게 연락이 왔다며

남양주에 요양병원에 있다 한다. 우리하고 연락을 끊은 이유가 병 때문이었다고 했다.

"그렇게 힘든 일이 있으면 연락하고 의지하고 해야지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리고 그 친구에게서 장문의 기도해 달라는 문자가 왔다고 카피해서 전문을 보내왔다.


친구들아.
딸아이 앞에서 의사 선생님이 많이 살면 한 달 반이라고 했다.
호스피스 연결을 해주겠다고 사인하래. 마지막에 의사가 제시한 건 310만 원짜리 보험이 안 되는 항암주사를 3주에 한번씩 맞으면 1년의 생명을 연장할 수 있다고 했다. 지금 상태는 몸의 모든 장기가 암에서 나오는 물로 다 잠기고 심장이 물에 잠겨서 신장에 펌프질 역할을 못해 소변을 못 본다. 소변줄을 달고 장기마다 관을 뚫어서 물을 빼내고 있는데 이 과정이 너무 고통스럽다. 많은 환자들이 왜 포기하나 했더니 내가 겪으니 이 과정이 고통스러워서 포기를 하는 거였다. 주위에서 이렇게 물을 빼내다가 천국에 가는 사람을 여럿 보아왔기에 나도 나의 상태를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다.

친구들아, 난 연명 치료 안 하겠다고 사인했다. 딸들은 연명치료 해야 한다고 울고 난리지만

내가 믿는 건 치료자 예수님이니까 엄마 안에 예수님이 계셔서 죽어도 살겠고 산다면 많은 환자들에게 전도하라고 살리시는 거라고 말했다.

딸들이 나의 믿음을 믿지 않고

"그러다가 죽으면 어떡해? "라고 하지만

"나를 예수님이 나를 품에 안아서 넘치도록 위로해 주시기를 바란다."

라고 했다.

너희들은 나를 이해해 줄 수 있지?


요즘 기도로 이 말씀을 걸고 선포기도 하고 있다.

"예수님이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으니라(벧전 2:24)

기도 부탁한다."



순희의 믿음이 부러웠고 진정 하나님의 자녀구나 생각이 든다.

순희의 아픔을 생각하니 계속 눈물만 났다.

그동안 혼자 병을 치료하느라 얼마나 힘들었을까? 친구들에게도 연락도 하지 않은 채 말이다.

"나라면 저렇게 암이 온 몸에 전이 되어서 ' 한달 반이 당신의 생명이 남은 시간이오' 라고 하는 말을 들으면

어떻게 할까? "

과연 순희처럼 울고불고 하지않고 담담히 주님께 생명을 맡기고 연명치료를 하지 않을지 ....

나에겐 믿음이 없다는걸 알았다.


순희에겐 아직 어린 딸들이 있는데 생명을 거둬 가신다면 남은 아이들은 믿었던 주님께 과연 감사를 할 수만 있을까...



순희가 아픈 몸을 이겨내고 깨끗이 회복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4월 둘째 주에 그 친구가 있는 병원에 가기로 하였다.

어떻게 대면하여 눈물을 참을 수 있을지 어떻게 태연하게 대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가서 손잡고 기도하고 싶다.


사랑의 하나님,

치료 중에 겪는 부작용과 고통 속에서도

그의 심령이 낙심하지 않도록 하여 주옵소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 들아 다 내게로 오라” 하신

주님의 음성을 들으며,

그의 가족들과 의료진에게도 지혜와 인내를 주소서.


주님,

이 환우가 육신의 병뿐 아니라 영혼의 평강을 누리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사랑과 동행하심을 깊이 경험하며,

이 고난의 시간 속에서도 믿음을 잃지 않고

오히려 주님과의 관계가 더욱 깊어지게 하옵소서.


주님께서는 이미 십자가에서 우리의 연약함과 질병을 지셨기에

우리는 주님의 치유를 확신합니다.

순희가 치유의 기적을 경험하게 하시고,

그의 삶이 주님의 은혜와 사랑을 증거 하는 복된 간증이 되게 하옵소서.


모든 영광과 찬양을 받으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순희가 이미 연명치료를 포기한 상태이기 때문에 내가 할 일은 기도밖에 없다.

모든 생명줄은 하나님이 잡고 계시니 그를 어떻게 사용하실지는 주님만이 알 일이다.

기도를 잘 못하니 생각나는 대로 적어가서 읽어줘야겠다.

순희의 마음에 평안을 주시기를...


기도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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