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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달래 Nov 25. 2023

큰 딸에게 올립니다

엄마가 너를 애늙은이로 만들어놨네




나에게 두 딸이 있다.

세상의 은혜와 세상의 기둥.

스물세 살에 엄마가 되어서 엄마가 되는 게 뭔지도 모르고 애를 낳았다. 다행히 분가하기 전, 큰 애가 8개월까지는 친정집에서 엄마가 거의 키워주셨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첫애를 낳았으니 동네에서 아주머니들이

"애가 애를 낳네 ~" 하시며 내가 포대기로 아기를 엉거주춤 업은 걸 보시면

 "이 띠를 이렇게 한 번 두르고 엉덩이에 받쳐서 둘러야 아기가 안 미끄러져 밑으로 안 내려가는 거야~"

고쳐 매주셨다. 그 정도로 아무것도 모르는 애가 엄마가 돼버렸다.



그리고 분가를 해서 둘째를 낳았다 어느새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일주일 뒤에 신생아 정기검사 겸 산모 상태를 받으러 산부인과와 소아과에 가서 검사를 받았다. 막내 가슴에 청진기를 대보시더니

"심장에 잡음이 있네요. 큰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아보세요~"

의사 선생님이 말씀을 하시는데 어린 엄마인 나에게도 그게 무슨 말인지 느낌이 왔다.

"잡음?..! 심장병이구나...."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쳐갔다. 다음날 대학병원 흉부외과에 예약을 하고

심전도 검사와 여러 가지 검사를 받았다.

연세가 지긋하신 과장님이 "문제가 있네요 심실중격결손이라고 심실과 심실사이에 2.6밀리의 구멍이 있습니다"하시며 빨갛고 파랗게 현란하게 움직이는 모니터를 보여주신다.


 "그럼 어떻게 해요, 선생님? 당장 수술을 해야 하나요?"

심장병이라 하면 입술이 파래지고 조금만 뛰면 숨이 가빠오는 그림이 머리에 떠올랐다.

"이런 경우엔 당장 수술은 하지 않고  시간이 지나면서 닫힐 수도 있고 닫히기까지 10여 년 동안은 1년에 한 번씩 꾸준히 검사를 받아야 합니다"

"그럼 걷고 뛰는 거는 할 수 있는 건가요?"

"구멍이 크지 않으니 지켜봐야지요, 그때까지 닫히지 않으면 10살 정도에 수술을 하면 됩니다"라고 하신다.




갑자기 머리가 멍해지며 세상이 정지되는 느낌을 받았다.

3킬로도 안 되는 핏덩어리를 안고 집으로 오는 택시 안에서 나는 하염없이 눈물이 나왔다. 이 어린것 가슴에 매스를 대야 하는 일이 생기다니...


'내가 뭘 잘 못해서 이런 일이 생긴 걸까? '

집에 와서 아이를 눕히고 주먹만 한 자기 심장에 의지 해서 겨우 숨만 쉬고 있는 아이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배가 고픈지 울기시작한다. 젖을 물려주니

큰 애 때처럼 젖을 잘 빨지도 못하고 몇 번 빨았다가 입을 고를 반복한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가슴이 너무 아파서 계속 눈물만 난다. 아가도 힘이 드는지 숨을 쉬려고 잘 가누지도 못하는 얼굴을 옆으로 돌리며 케케하고 울음을 터뜨린다.

"아가야 미안해 엄마가 잘못했어. 너를 건강하게 못나서 미안해.."



그때 큰 아이는 4살, 엄마의 손길과 사랑이 필요한 나이였다. 

그런데 나는 큰아이보다 심장병을 가지고 태어난 둘째가 아픈 손가락이었다. '혹시나 놀다가 넘어져서 심장에 충격이 가면 어쩌나, 피가 나서 피가 멈추지 않으면 어쩌나' 이런저런 생각에 아픈 애한테 집중을 했다. 큰 애가 5살 때 동네 어린이집에 다닐 무렵 둘째는 돌잔치를 했다. 다행히 그때까진 크게 잔병 없이 1년을 버텨준 것에 고마울 뿐이다. 키우면서 혹시 이제는 막내가 심장구멍이 닫혀서 쉭쉭 새는 잡음이 나지 않을까 병원놀이를 하는 척하며 어린이 놀이기구인 청진기를 들여다대며 소리를 들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조그만 장난감 청진기로도 구멍이 새는 소리가 들렸다.

'아직 닫히지 않았구나....' 20대의 나의 시간은 신혼도 없었고 아이들 키우는데 모조리 바쳐야 했다.

막내의 심장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했다.




동생이 태어나기 전까지 엄마아빠의 모든 사랑을 받았던 큰애는 엄마가 막내만 애지중지하는 걸 보며 어린 나이에 애어른이 돼버렸다. 내가 큰소리로 얘기를 해도 깜짝 놀라서 큰 눈을 깜빡거리며 눈치를 봤다. 나는 큰 애를 다 큰 아이처럼 대했다. 둘이 놀다가 싸워도 동생은 울고 언니는 어쩔 줄을 몰라했다. 자기 때문에 우는 게 아닌데도 내가 저한테만 뭐라고 할 게 뻔하닌깐 미리 겁을 먹었다. 내 눈에는 큰아이가 다른 또래의 애들보다 몇 살이나 큰 아이로 착각하며 대했던 것 같다. 애들 아빠가 늦게 들어오는 날이 많을수록 큰 아이한테 의지를 많이 했다.

'동생이 아파서 태어났으닌깐 엄마가 저러는 걸 거야'라고 이해를 할 줄 알았다.

내가 잘못 생각했다. 애는 애였던 거다.




그렇게 막내는 대학병원에서 매년 검사를 받았고 이 치료를 받을 때도 미리 3시간 전에 가서 마취약을 먹고 치료를 해야 했다. 어느새 학교에 들어가고 담임선생님께 막내의 심장병 내용 말씀드려야 했고 체육시간에도 심하게 운동을 못하게 부탁 말씀을 드려야 했다. 

9살이 되던 해에 막내는 기적같이 구멍이 닫혔다.



                                                                         



이제부터가 본론이다.

딸아이들이 이제는 서른을 넘어간다. 큰 딸은 무슨 일이든 병적으로 남에게 싫은 소리를 듣기 싫어했고 완벽하게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아이로 커있었다. 슬슬 말을 적게 하는 딸눈치를 보며 서로 앙금이 쌓여갔다. 어느 날인가 그 아이는 마음의 문을 남산타워만큼 높게 쌓고 엄마와 대화를 닫아버렸다. 처음엔 뭐 서운한 게 있나 하고 며칠 지나면 낫겠지 했다.

한 달이 지나도 그 애는 그 벽을 헐지 않았다.

12월 24일 아이의 생일날 미역국을 끓여 그 아이의 집 벽을 먼저 두드렸다.

문을 빼꼼 열며 나오는 순간 나는 알았다. 엄마의 사랑이 아직 필요한 아직도 어린아이였다. 



"잘 지냈니? 엄마가 서운하게 해서 그런 거니"했더니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엄마 나 정신과 다녀~"

나는 내심 놀랐지만 그러면 대화가 멈추게 될까 봐

"엉? 상담하러?"

"엉 , 나 언제부턴가 아무것도 하고 싶은 게 없어졌어."

".................................. 왜? 그동안 잘 지냈잖아"

"엄마 앞에선 잘 지내는 척했지만 난 힘들었어."

그랬구나 아이는 오래전부터 아팠었구나 깊은 상처를 내가 몰랐구나. 나는 아이가 자기 할 일 잘하고 호주 유학도 잘해왔고 졸업하고 취업도 하고 해서 사회에 잘 적응하는 줄 알고 있었다. 

"그거 맘먹으면 좋아지는 거 아닌가?"

아이는 우울증에 아파하고 있었던 거다.

나는 그게 잠깐 우울하다가도 좋은 생각을 하면 다시 웃을 수 있는 건 줄 알았다.

"엄마는 너무 모른다. 책만 볼 줄 알지 그건 맘이 안 먹어져서 그런 게 아니라 그런 맘이 안 들어서 병인 거야... 하루종일 내 방에서 나가고 싶지 않다고 맘을 먹어서 되는 게 아니라고요!"


그제야 아이는 어릴 적 가족 간의 겪었던 일들을 풀어놓으며 이제까지의 서러움과 아픔을 털어놓았다.

"엄마는 동생이 태어나고 나만 혼내고 동생만 잘 보라고 하고.. 나도 엄마한테 관심을 더 받고 싶었단 말이야"아이는 울음을 터뜨렸다.

생각지도 못했던 딸아이의 말을 듣고 갑자기 멍해졌다. 그랬겠구나 내가 큰애를 너무 크게 보았구나.

'미안해 딸아 아픈 동생 때문에 너를 너무 일찍 철들게 했네. 그 나이 때 애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다'

아이의 눈에서 흐르는 눈물을 본 순간 나도 눈물이 흘렀다. 어린 나이에 엄마가 되고 아픈 아이를 키우며 20대를 보내며 겪었던 일들이 파노라마가 되어 스쳐갔다.

"네가 이해를 해줄 줄 알고 엄마는 동생만 생각했네. 너도 딸이 처음이듯이 엄마도 처음 해보는 엄마라  못해냈네"


아이는 눈물을 추스르며 볼멘소리를 한다.

"그랬네 엄마, 다음 생애엔 엄마가 내 딸로 태어나~서로 바꿔해 보면 엄마도 내 맘 알겠네!?"

하며 아이를 꼭 안아주었다. 30여 년 넘게 쌓였던 앙금이 어떻게 하루아침에 풀어지겠냐만 다 큰 아이지만 더 이해하고 품어줘야겠다고 마음이 들었다.

사람 인성이 만들어지는 시기가 6살까지라고 들었는데 나는 4살 때부터 큰 아이에게 나이에 맞지 않는 많은 걸 기대하고 스스로 해줄 줄 알았던 무식한 엄마였구나를 이제야 느끼게 되었다.


치료와 상담을 통해서 지금은 전과 다르게 좋아져서 자기 사업을 하고 있는 대견한 딸, 이제 문밖으로 나서서 소통을 하는 딸, 잠시 멈췄던 첼로를 다시 켜기 시작한 딸, 엄마에게 성경만 보지 말고 엄마가 좋아하는 글도 쓰면서 엄마도 치유를 글로 해야한다고 이렇게 브런치스토리를 쓰게 해 준 딸.

고 

다.

나에게 딸이 되어줘서 마음을 열어줘서..




큰 딸님, 딸에게 올리는 나의 마음을 받아주세요.

다른 세상에서 만난다면

" 다시 엄마로 태어나서 더 잘해줄게요 나의 보물아."



 다음엔 심장병을 이겨낸 막내에게 보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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