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보냈나 보다 잔뜩 바리바리 보냈겠지?' 하며 집 앞에 도착해 보니 생각보다 큰 아이스박스가 놓여있다. 두 손으로 들어보니 바위같이 꿈적도 하지 않는다. 박스를 발로 밀고 들어가 신발장 앞에 두고 하나씩 꺼내보기로 한다.
'친정엄마라도 이렇게 못 보낼 거다.'혼자 중얼거리며 보니
배추김치, 갓김치, 겉절이, 고들빼기, 섞박지, 서리태 돈부 완두콩, 콜라비와 2개의 양상추. 종류도 많다.
이제 퇴근해 들어오는 큰아이가 보더니
"이게 다 모야 엄마?"
"수현이 이모가 또 보냈네! 이걸 어떻게 다 먹나? 동네잔치를 해도 남겠네~!"
옆에서 보던 딸아이는
"엄마는 좋겠네 해마다 이렇게 김장을 안 해도 되고... 챙겨주는 친구가 있어서..."
"그러게 말이다 올해도 꽁으로 김칠 먹겠다."
수현이는 나의 어릴 적 친구다.
1979년도 중3 때로 거슬러 올라가 볼까? 그 애와 나의 만남은 이렇게 기억이 된다.
"이게 뭐야?"
"추자..."
"호두 같은데?"
"그거랑 좀 달라... 맛은 비슷해"
짝꿍 수현이는 굵은 로뜨로 말아 파마를 한 것처럼 노란 곱슬머리에 주근깨가 귀여웠던 빨간 머리 앤 같은 외모의 내 짝꿍이다.
"이거 우리 집 마당에 있는 나무에서 열린 거야 좋아하면 먹어~"
하며 책가방에서 한주먹을 꺼내서 내 손에 쥐어준다.
보니 호두같이 생긴 호두보다 조금 길쭉한 열매다.
도시에서 전학을 간 나는 추자라는 걸 처음 보기도 하고 나무에서 이런 걸 따서 먹는 시골 사람들이 신기했다. 이빨로는 도저히 딱딱해서 깨지지가 않아 내가 앉아있는 나무의자를 살짝 들어 엉덩이에 힘을 주니 반으로 쪼개지거나 아예 깨부숴져서 하얀 속살까지 터져 나오기도 한다.
그런데 전에 시장에서 대보름날 먹어봤던 호두와는 다르게 하얀 살이 촉촉하고 고소해서 깨를 씹어먹은 뒷맛처럼 달달했다. 그렇다고 설탕 같은 단 맛은 아니고 밤의 살짝 단맛이랄까 그런데 진짜로 살이 보들보들 연하다.
한 여남은 개 쥐어 준 그 추자를 손으로 살살 비벼 다 까먹었고 거기서 나오는 부스러기 껍질은 내 교복 호주머니로 가득 찼다.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추자 공급자 수현이는 몇 개씩 마당에 떨어지거나 털어 따온 그 연한 추자를 내게 살짝 건네주었다.
한 일주일이나 열흘 지났을까..
"오늘은 추자 없어?"
"엉 이제 다 떨어졌어.."
"아 그렇구나 나무에도 없어?"
"아버지가 다 털어서 없어 내년에 또 열릴 거야."
나는 이제 그 연하고 고소한 추자를 못 만나서 내심 섭섭했다.
그 친구완 졸업을 하고 사는 곳이 다르니 연락이 끊겼고 나는 서울로 시집을 와서 시골을 떠났다.
30년 만에 중학교 동창회를 한다고 내려갔는데 20여 명 나온 중에 혹시나 한 수현이 보이지 않았다,
만나면 그때 그 추자 이야기를 해주려고 너무 맛있었다고 이야기를 하려고 했는데 ,,
수소문 끝에 그 친구의 연락처를 알아냈다. 전주에 살고 있다고. 나는 혹시나 나를 모를까 잊어버렸을까 해서 문자를 보냈다.
"혹시 중학교 때 친구인데 중3 때 짝꿍 기억하려나?"
그 친구에게 바로 전화가 왔고 우리는 타임머신을 타고 3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그 친구는 동창들 중에 나를 제일 만나고 싶었다고 한다.
"너는 공부도 잘했고 반장이고 서울서 왔고 선생님들한테 인정도 받았고 우리와는 달랐지.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니라 넌 어떤 친구들과도 잘 지냈고 공부를 못하건 그런 건 상관없이 모든 아이들에게 잘해주었던 착한 애여서 모두가 너를 좋아했었어."
"엥? 그랬나? 난 기억이 잘 안 나는데 나도 서울서 전학을 간 상태여서 외롭고 친구들을 사귀고 싶었을 거야."
폭풍 칭찬에 얼굴이 확 달아올랐는데 친구는 한마디 더 붙인다.
"그런데 너 기억해? 나는 집에서 도시락을 못싸오는 날이 많아서 점심시간이 되면 슬쩍 나가 있다고 들어오고 그랬는데 그걸 네가 알고는 보온 도시락밥통을 내 앞으로 밀어놓고 반찬통은 니 앞에 놓아놓고 나 혼자 다 못 먹어"그러더라.
"어? 그런 일이 있었나? 내가 그랬었나?"
좀 쑥스러웠다.
그 친구는 그때 부모님이 모두 농사를 지으셔서 밭에 일찍 나가는 바람에 막내인 그 아이는 누가 챙겨줄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한두 번 그랬던 적도 있었던 것 같은데 거의 반학기 이상을 그렇게 남들이 눈치 못 채게 자기랑 밥을 먹었다고 했다.
그래서 어린 마음에 너무 내가 커 보였다고 한다.
나는 기억도 잘 안나는 이야기를 들으니 의아하기도 했지만 좋지 않은 일이 아닌 좋은 일로 기억해 주는 게 더 고마웠다.
"수현아 , 나 그때 네가 갖다 준 추자라는 거 첨 봤었고 지금도 그 맛을 잊지 못한다. 널 만나면 고맙다고 꼭 전하려 했었어. 그 나무는 지금도 잘 있니?"
"그랬구나 시골에서는 그런 거 귀하게 생각지도 않아. 너니깐 그렇게 맛있게 먹어준 거지. 지금은 추자나무는 다 베어내고 집을 지었지."
수현이는 신혼생활을 방한칸 셋방으로 시작을 했는데 남편이랑 시공무원으로 퇴직을 하고 30여 년 직장 생활하다가 P시에 땅값이 오른다 하여 집을 팔아 아파트 두 채를 사서 대출이 끼었지만 투자에 성공을 했고 아들딸도 잘 키워서 내년엔 결혼을 시킨다고 하니 정말 축하할 일이다.
이렇게 장황하게 케케묵은 얘기를 하는 건 내 자랑을 하려고 하는데 아니다.
그 친구가 나를 다시 만나게 된 지 10여 년 되어가는데 그 해 겨울부터 김장을 담을 때마다 한두 통씩 집으로 보내온다는 것이다.
"왜 이렇게 많이 보낸 거야?"라고 전화를 하면
"아냐, 어릴 때 너는 나한테 더 잘했어 진심이 느껴졌었거든 그게 살면서 고마웠어..."
"그래도 이건 너무 과한 거 아냐? "
"사서 보내는 거 아니고 농사지어 같이 먹자는 거니깐 부담 없이 먹어~~"
갓김치 섞박지 파김치 고들빼기 종류별로 봉지에 몇 번씩 패킹을 하고 농사지은 깨 참기름, 땅콩, 파, 무 등을 같이 나누어 먹자고 시시때때로 보내주는 성의가 보통은 아니다.
어릴 때 순수했던 마음으로 한 행동들이 다른 사람에게 좋은 영향을 주고 착한 사람으로 기억이 돼
었다니 고마울 뿐이다.
선한 끝은 있고 악한 끝은 없다는 어른들 말씀이 생각난다.
오늘도 김치 선물을 받은 나는 친구에게 감사의 전화를 해서 구구절절 고맙다고 잘 먹겠다고 했더니
"우리끼리 무슨 감사냐? ~내년 아들 결혼할 때 보자"하며 전화를 먼저 끊어준다.
"너는 나의 하나뿐인 친구야!!"라고 문자를 보내 준 수현이에게 나도 마음의 친구가 되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