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 중반쯤일까.
국민학생 때의 촌스러움을 겨우 벗고 중학생이 된 달래!
그 당시 달래는 '고자란 말이 어떤 것이 고장이 났다' 란 말인 줄 알았다.
어디서 주워들은 소린지 잘 모르겠다. 같이 뛰어놀던 코흘리개 남자 애들에게서 흘려들은 소리같기도 하다.
다음 시간이 수학 시간인데 내 컴퍼스가 삐걱거리며 중심이 안 잡히고 빙빙 헛돌았다.[컴퍼스:콤파스라고도 함]
"이럼 안되는데. 그럼 원을 그릴 수가 없잖아. 시작하려면 1분도 안 남았는데.."
후다닥 뛰어가서 3반 수연이에게 내 컴퍼스를 흔들며 소리 질렀다.
"수연아 컴퍼스 좀 빌려줘
내 거가 고자야!!!!!~~~"
수연이는 금세 알아듣고 컴퍼스를 가지고 복도로 뛰어나오고 있었다. 받아서 교실로 들어가려는데
갑자기 누가 내 머리를 콩하고 쥐어박는다.
나를 내리 친 사람은 다름 아닌 3반 담임 김병두 수학 선생님!~
"앗! 선생님!"
그때까지만 해도 준비물을 제대로 준비 안 해와서 한대 툭 친 줄 알았다.
벌써 선생님은 수업을 하시러 우리 반 쪽으로 걸어오시고 있었던 것이다.
선생님은 알 수 없는 희한한 얼굴로 나를 내려다보셨다. 그리곤 이렇게 물으셨다.
"니...! 고자가 뭔지 아니?"
"네!? 그건.... 고장 났다 아닌가요?"나는 자신 없는 목소리를 뒤로 한 채 슬슬 뒷걸음질을 하며 내 자리로 들어가 앉았다.
교실에 있던 남학생들이 마구 키득대며 웃었다.
너무 창피했다. 뭐 때문에 저리 웃는 거지?
나는 선생님이 머리를 툭 친 게 자꾸 신경이 쓰였고
'고자가 뭐길래 다들 웃고 난리야? '
수학시간 내내 컴퍼스를 돌리며 '고자 고자~~~ 고만 하자!!' 수업에 집중이 안 됐다.
자다가 잠꼬대도 할판이다.
드디어 수업이 끝났다.
우리 반 남학생 1번 영진이가 말이 통할 것 같았다. 키는 작지만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젤 잘 아는 말하자면 좀 까진 애였다.
늘 숙제를 안 해오고 복장불량에 수업태도 안 좋다고 선생님한테 엉덩이를 맞는 데 이력이 난 아이다.
그래서 남동생 같기도 하고 안 돼서 평상시에 좀 챙겨주는 사이였다. 집에서는 귀한 아들인데 학교에 오면 구박을 받는 영진이..
복도로 손짓을 하여 불러 내는 데 성공했다.
"영진아, 고자가 뭐야?"
"진짜 몰라?" 영진이는 실실 웃으며 물었다.
"고장 났다 뭐 이런 걸로 아는데.."
"이그 그게... "
말을 하려다가 얼굴이 붉어지는 영진이에게 바짝 한걸음 다가갔다.
"너 환관이라고 알아?"
"그거 내시 아냐?"
"그래 불완전한 남자의 그거를 고자라고 한다!!"
"엥!! 여학생 입에서 말할 단어가 아니었네 ㅎ "
아까 반에 있던 그 소리를 들은 아이들이 모두 킥킥거렸던 이유를 그제야 알고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너무 상식이 없는 나에게 그 말을 던지고 영진이는 화장실 쪽으로 내뺐다.
부끄러운 건 나였다. 고자란 말을 그렇게 복도가 떠내려가라 하게 큰소리로 말을 했으니 말이다.
세월이 어느덧 50여 년이 지나고 나니 철없이 까불어댔던 중학생 시절이 엊그제 일같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그날일은 어른이 된 이후에도 달래 창피사건으로 기억이 되었다.
최근에 전에 방영했던 용의 눈물이라는 사극이 TV에 재방되며 내시가 등장했다.
그날의 사건이 떠오르며 가족들에게 엄마의 컴퍼스 고자 사건을 말해주었다.
"우리 엄마 그때도 날리셨네요. 수학선생님이 얼마나 당황하셨기에 여학생 머리를 치셨겠어!! 여중생 입에서 그 단어가 아무렇지도 않게 나왔으니 말이야!!"
"그러게 그때 생각하면 살짝 부끄럽기도 하고 추억이 생각나기도 하고 하네. 그날 그 장면이 우스워서...ㅎㅎ"
큰애가
"엄마 tv에서 언뜻 본 건데 환관이 그 당시에 다른 직업들보다 5배나 월급도 많이 받고 정년도 없고 퇴직금도 두둑했다던데!?"
그리고
"옛날엔 자식들을 많이 낳았잖아 그들 중에 한 명만 특정한 신체 절단을 겪게 하여 이 일에 종사하도록 강요했대. 비록 자식을 낳을 수 있는 능력은 거세되었으나 부부관계도 가능했고 더구나 다른 이들보다 그들은 장수했다던데!?"
나보다 상식이 풍부한 아이들에게서 몰랐던 사실을 들었다.
어떻게 그 시절에 어떤 방법으로 거세를 했을지 궁금해서 검색을 해보았다.
삶은 달걀을 물 없이 한 번에 삼키라 하고 욱욱 거릴 때 한 번에 잘랐다 하고 번개 치는 날을 택했다고 쓰여있었다.
50여 년 전 컴퍼스 고장 사건이 별 걸 다 알게 해주는구나 싶기도 하고 아이들과 환관정치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는 계기가 되었다.
수학 선생님은 지금쯤 어디서 노후를 보내고 계실지......
그때
'이 철부지를 어찌할꼬..' 하며 그 안쓰럽게 내려다보시던 그 눈빛이 세월이 흘러도 잊히질 않는다.
메인 그림 출처 :블로그 달봉이의 주경야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