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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대로 한세상 이러구러 살아가오
0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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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김달래
Dec 03. 2024
싱건지! 네가 나를 살린 거냐?
황천길 문 앞에서...
싱건지:
소금물에 삼삼하게 담근 무김치.
‘
국물김치
’의 방언(전남)/
'
동치미
'전라도 방언.
70년 초반 때 일이니
예닐곱 살쯤
먹었을 때였을까?
국민학교 5,6학년
사촌
언니,오빠를
따라나섰다.
서울
도심이
아닌
성남
외할머니댁으로 놀러
간다기에
따라붙었는데 아마도 혼자 놀기 싫어서였을 것이다.
할머니가 주시는 손맛 가득한 함경도식 밥상은 엄마가 해주는 음식보다 맛있었다.
특히 좁쌀과 무가 반은 뒤엉겨붙은 가자미식해와 고등어자반 지짐은 할머니의
특급요리였다.식해에 붙어있던 조는 조금 징그러워서 젓가락으로
깨작거리며
떼다가 할머니의 매서운 손에 맞아 들고 있던 젓가락을 떨어뜨리기도 했다.
역시 호랑이 할머니다. 우리가 붙여준 별명이다.
함경도식 식해 ㅡ 네이버이미지
그래도
내가 좋아하는 종합선물세트도 할머니는 준비해
놓아서 좋았다.
첫날밤
자는데 잠결에
보니
나보다 5살이나 위인 언니가 곰처럼 네 발로
기고있
었다.
오빠는
자고 있는 나를 마구 흔들어
깨웠고 내가 안일어나자
끌고 나가다시피 나를 마루에 패대기를 쳤다.
"
아야야!~~~
왜 그래 오빠?
아프다고!!"
밖은 어스름 동이 트기 전이다.
아니 이 새벽에 왜들 난리인거지? 눈을
비비며
그들을 보고 있자니 나도 토할 것같이 메슥거리며 머리가 무거웠다.
머리를 부여잡고 마루에 누워서 숨을 들이켜고 캑캑거린다.
신선한
바깥공기를 헉헉 맡고 있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좀비 같은 모습이었다.
할머니는 새벽기도를 가셨는지 보이지 않았고
고만고만한
아이들 셋이 마루에 앉아 콜록거리고 있다.
차가운
공기를 마시고 한 10여분 지났을까..
언니가 부엌에 가서 대접에 담아 온 건 뭔 맛도 없는
뿌연 국물...
지금 생각해 보니 싱건지 국물이었다.
다들 돌려가며
벌컥벌컥
마시고 나니 춥기도 하고 방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
어슴푸레 시야가 밝아 올 무렵,
"언니 나 추워... 방에 들어가면 안 돼?"
"안돼! 할머니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해! 연탄가스야!"
하며
국방색 담요를 끄집어내 와 막내인 나를 덮어
씌워주었다.
연탄이 활활 탈 때는 모르는데 할머니가 교회 가시면서 탄을
갈았는지
연소가 제대로 되지 않아
아이들은 연탄가스를 맡고 자고 있었던 것이었다.
며칠 전 보일러 시공이 잘못되었던 건지
조금만 더 늦었더라면
한 씨
할머니의
씨들이
모두
황천길로 갈 뻔한 사건이었다.
곧 할머니가 오셔서 이 광경을 보시고 놀라셨으나 할머니는 간호장교 출신이셔서 사태를 바로
파악하셨다.하나하나 눈을 들여다보고 숨쉬는 걸 보시더니
"
괘안타 ~
상태를 보니 죽지는 않겠다!"
'
터프하시네 울 할망!'
언니의 예민한 후각으로인지 아직 갈때가 아니라는 주님의 뜻인지 우리는 지금까지 살아서 그날 일을 가끔 떠올리긴 한다.
"명이 길긴 하다..." 하며.
60이 넘으신 호랑이 할머니는 아직 숨어 붙어 있는 아이들을 돌아보시며 싱건지 한 사발을 주욱 당신이 들이키셨다.
요즘 사람들이 들으면 도대체 무슨 말이지 하겠지만 옛날에는 연탄가스를 맡았을 때 싱건지 한 사발 마시면 산다고 그리 믿었다. 과학적인 근거는 모르겠다.
오늘날에는 찾아보기 힘든 연탄을 많이 때던 시절, 70년대 겨울철이면 연탄가스 중독과 관련된 소식이 늘 들리곤 했다.
연탄은 겨울에 주로 때고
싱건지
도 겨울에 주로 먹으니 급한 김에
손에 잡히는
국물이라도
들이킨
것이리라.
그때 먹었던 희뿌연
싱건지
를 내가 오늘 처음으로 담가 보았다.
교회 텃밭에
아직
남아 있는
무를 뽑아내니 무
하나가
어른
손목만하게
자라다 만 것 같았지만 단단해서 싱건지 담기엔
딱이었다.
열 댓개
정도나 될까 버리기도 아까웠다.
그다지 어렵진 않았다.
사진과 같이 갖가지 양념채소들과 무를 절여 넣고
고추짠지도 넣고 합치(까나리와 멸치) 젓갈을 넣고 사과 배 등을 갈아 붓는다.
사과 배도 잘라서 함께 넣기도 했다.
물론 간을 봐가면서 생수를 부어준다.
탄산같이 코가 뻥 뚫리는 맛을 내려고 이 많은 재료들이 들어간다니 우리 조상들의 지혜는 가히 놀란 만하다.
약간의 뉴슈가
를
넣으면
감칠맛이
난다 해서 솔솔 뿌려 주었다.
(냉장고에 비트가 몇 개 남아 있어서 색깔 우러나라고 몇 개 잘라 넣었고 남은 건
꿀을
넣어
비트주스로
꿀꺽
!
)
담다가
떠오르는 게
있어 적어 보았다.
싱건지 예찬
싱건진지 동치민지 너의 진짜 이름은 무엇이냐?
아주
어릴 적 네가 나를 살렸구나!
짭조름한 듯 쌉쌀한 듯 무즙 우러나 오독오독 씹으며
아삭거리는 소리를 입에 넣고 음미한다.
천천히 씹다 보면 짠맛과 시원한
청량감에
자근거리는 소리까지 들리는 듯하다.
싱건지는
우걱우걱
먹는 찬이 아니다.
무 아닌 국물맛으로 먹는 게 싱건지다.
엄마는
'겨우내 독 속에서 면포에 싸인 고추, 마늘, 배, 사과 들이
우러나 어울려져야 진정한 신비로운 국물맛이 난다.'라고 하셨다.
이중에 화룡점정은 군내를 잡는 생강에 있다.
무 하나 정성 들여 썰고
쪽파 하나 송송 썰어 띄우고 빨간 고추와 사과까지 올리면
찬 없는 상을 화사하게 밝혀주는 입맛 돋우는 엄마의 밥상.
소박한 멋이지만
흡족한 단백미에 반할 수밖에 없다.
국민학교 6학년 때 밤나무향이 가득한
시골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시골깡촌이기에 냉장고도 없었고 우물이 있어서 두레박으로 마실 물을 길어먹는 게 재미도 있었다.
마중물이라는 걸 그때 아빠한테 배웠는데 바가지로 퍼부어가며 우물 깊은 샘에서 물을 끌어 토해내게 하는 그 과정은 해본 사람만이 안다.
코끼리 같이 긴 관에서
퍼퍼벅
물이 터져 나올 때의 쾌감이란!!!
눈이 내리고 땅이 꽁꽁 얼어갈 무렵엔 마당 그늘진 땅에 묻은 동치미 항아리와 김장독에서는 익어가는 아우성이 들린다.
한밤중에
내가 젤 싫어하던 일이 있다.
"달래야. 가서 싱건지 한 사발 떠오렴!! 국물이랑 "
단단히 봉해야 한다는 말까지 꼭 빠뜨리지 않으신다.
밖은 눈보라가 치고 바람소리마저 요란한데 엄마는 꼭 나를
시키신다.
할 사람이 없기도 하다.
무섭기도 하고 일단 비닐과 포대로 덮여있고 뚜껑마저
무겁다.
눈 내린 날
아빠가 땔감으로 팰
소나무를 끌고 산을
내려가라는
일보다 더 하기 싫었다.
손가락이 얼 것 같고 항아리
열고 닫는
데만 한참 걸린다. 시래기 걷어내고 꽁꽁 묶인 비닐봉지 걷어내고
"휴! 엄마는 진짜 엄마가 아닌가 봐 이런 일만 나를 시킨다니까..~"
그래도 혼나는 것보다는 낫다 싶어 동동거리며 가져간 바가지와 국자를 사용해 퍼낸다. 살얼음이 얼어 있는 싱건지 표면은 국자로 톡톡톡 쳐야만 국물이랑 무를 꺼낼 수가 있을 정도이다. 한번 열었을 때 들 수 있을 만큼 가득 덜어내고 다시 봉해 놓는다.
'어서 들어가자! 다신 안 한다고 해야지 '
하며 집안으로 들어가면
언
귀랑 손이
녹으며
간질간질
거린다.
아빠는 준비해 놓은 숯에 구운 고구마와
밤 시렁위에 익은
대봉시, 내가 좋아하는 땅콩을 신문지 위에 펼쳐놓고
기다리셨고
엄마는 내가 덜어간 무를 꺼내서 먹기 좋게 송송 대접에 아빠거랑 두 그릇을 담아 내오신다.
아까 항아리를 열고 가져올 때는 춥고
싫었는데
온 가족이 동지 긴긴밤을 하하 호호 먹었던
야식과
그
얼음 동동
동치미의 맛을 잊을 수가 없다.
그렇게 몇 번을 꺼내다 먹다보면 긴 겨울이 갔다.
겨울밤의 정겨운 풍경이 지금도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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