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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심한 어린이

by 깡미 Feb 06. 2025

엄한 아버지와 자애로운 어머니 사이에서 자랐다. 그러니까 그만그만한 동네에서 남들과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비슷비슷하게 자랐다는 말이다.


그러나 나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것을 어려워했고, 발표시간에 손을 드는 일은 연중행사일 정도로 수줍음이 많은 아이였다. 담임선생님은 알아들었으면 끄덕이지 말고 '네' 대답 한마디라도 하라고 하셨고, 부모님도 탐탁지 않아 하시며 매번 거드셨다. 모두가 내게 적극적인 태도를 바라며 등을 떠밀었지만 억지로 바뀌려고 할수록 오히려 더 움츠러들곤 했다.




소심한 어린이였던 나에게 책은 하나의 도피처였다. 속에서는 누구보다 자유롭게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모험을 수 있었으므로 그 안으로 숨기도, 존재를 펼쳐 보이기도 했다. 종종 책 속에서 만나는 인물들에게서 전혀 다른 세계를 발견하곤 했는데, 그 안에는 나 같은 보통사람은 없었다. 평범한 삶을 사는 사람도 없었다. 적어도 내겐 모두가 특별했다.



그러나 현실 속 나는 지극히 평범했다. 책을 덮고 나면 여전히 조용하고 소심한 어린이로 돌아왔고, 주변이 요구하는 적극적인 모습과 나의 본래 성향 사이에서 갈등했다. 궁금하다. 꼭 존재의 변신을 해야만 하는 일이었던 걸까.



브런치 글 이미지 1


유치원에서 선생님이 "앞에 나와 노래 불러볼 사람?"이라고 하셨을 때, 웬일인지 나는 손을 번쩍 들었었다. 그 어린 마음에도 '이걸 도전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나 보다. 노래는 엉망진창이었고, 부끄러움에 눈물이 차오르려 했던 기분을 기억한다. 노래를 마친 후 크게 들려오는 박수소리에 성취감과 희열이 작은 파도처럼 스르륵 밀려왔었지만, 일생일대의 용기를 낸 건 그때뿐, 극적으로 달라지는 것도 없었다.


'나 아닌 것'을 끊임없이 자기 안에 투입해 나가는 운동성이야말로 나의 본질을 이루는 것이다.
-우치다 타츠루-


전과 달리 변한 점이 있다면 소심한 생각이 꼬리를 물 때 아무런 결론도 필요가 없다는 걸 알았다는 점이다. 여전히 애닳는 마음으로 전전긍긍하기보다 차라리 싹둑 잘라내 버리고 다른 것을 하는 연습을 통해 큰 단점 하나를 극복했다고 생각한다. 나를 뒷걸음치게 했던 것이 앞으로 나아가게 할 수도 있다는 걸 알았으니까. 이 시시한 깨달음이 과감한 여정으로 가는 첫걸음이라는 걸 나로선 아직도 알 길이 없지만 말이다.



그러는 와중에도 확실한 것은 이제 내 생각을 바꾸면서까지 타인의 생각을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혼밥을 한다거나 단체 채팅방에서 이모티콘을 덜 쓰게 된 것, 어떤 모임자리에서 내 생각을 솔직하게 말한 순간들이 그렇다.

'저 사람은 왜 혼자야'

'이모티콘이 없으면 너무 딱딱해 보이지 않을까?'

'이런 말 하면 분위기가 갑자기 싸해지려나?'

했던 것들에 개의치 않고, 예전 같으면 신경 쓰였을 상황들을 이제는 가볍게 흘려보낼 수 있게 되었다.



'눈치를 덜 보는 삶'이 가져온 해방감은 나를 더욱 나이게 한다. 한 가지씩 내려놓다 보니 몸도 마음도 한결 가벼워졌다. 눈치를 보지 않는다는 건 무심해지는 게 아니라 나를 중심에 두고 사는 일이었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내 행동에 관심이 없고, 결국 가장 신경 쓰고 있던 건 나 자신이었다.



그러니 이제는 좀 편안해지고 싶다. 나를 숨기거나 꾸미지 않아도 괜찮다고, 스스로를 다독일 수 있을 만큼.








사진출처: UnsplashMisael Silvera, 깡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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