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유월이가 어린이집을 졸업할 즈음 친구들이 하나 둘 목에 핸드폰을 걸고 나타났다. 초등 입학 전 키즈폰을 준비한 것이었는데, 아이는 평소 좋아하던 만화캐릭터가 그려진 핸드폰을 보고는 세상에 있는 감탄사를 모두 쏟아냈다. 그때 유월이의 눈은 으레 <내 친구가 가진 거라면 나도 가져보겠다>는 충만한 야망으로 반짝였다. 아이는 호시탐탐 기회를 노렸지만, 우리 집엔 최신형 스마트폰보다 구식 아날로그 부부가 먼저 출시되어 있었으므로 아이의 요구를 철통으로 방어하는데 무리가 없었다.
그런데 그 후로, 몇 차례 복병이 찾아왔다.
유월이의 학원 라이딩이 있는 날, 핸드폰이 없는 아이를 태우려면 학원 마칠 시간 즈음 약속장소를 단단히 일러놓고 만나는 방법밖엔 도리가 없었다. 하필 그날 그 시간에 긴급한 일과 중요한 일이 한꺼번에 닥쳐왔고(아, 신이시여. 엄마의 몸뚱이는 왜 하나로 만드셨나요) 공교롭게도 나는 아이의 담임선생님과 유선상담이 약속되어 있었다. 선생님과 상담 중에 아이가 집에 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고는 '아, 학원까지 어떻게 운전해서 갔더라...'
아이는 엄마를 잃어버렸을 때 움직이지 않고 그 자리에 서있는 거라고 배웠다며, 학원 앞에 찬바람을 맞아내는 망부석이 된 채로 잠자코 서 있었다.
나의 정신머리 없음과 유월의 단단함에 아찔해왔다. 일단 급한 불을 꺼야겠다. 핸드폰을 사줘야겠다. 오랫동안 물음표로 남았던 핸드폰의 쓸모가 그날 느낌표로 바뀐 것이었다. 더 이상 물러날 수가 없었다. 한편으로는 손바닥만 한 네모난 것이 몰고 올 후폭풍이 지레 무서워 머릿속에 자갈이 꽉 찬 것처럼 아파왔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집 세대주는 그렇게 바로 사 줄 순 없다며 한 발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리고 몇 주가 지나 독창적인 방법을 고안해 냈는데, 성탄절 선물로 교환권을 주는 게 어떻겠냐는 것이었다. 지금이다. 물 들어올 때 노 저으라고 했지. 지갑을 열겠다고 하는데 내가 마다할 일이 아니었다.
성탄절 아침, 유월이는 '스마트폰 교환권'이라는 글자를 보자마자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거 진짜 맞아요?" 신이 난 아이는 교환권을 손에 들고 폴짝폴짝 뛰며 그다음 말을 이어갔다.
"엄마! 나 지금 당장 가서 교환할래요!"
아이의 귀에는 우리 부부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듯했다. 당장이라도 집 밖으로 뛰어나갈 기세였다. 이러다가는 한겨울에 반쯤 얼어붙은 채로 대리점 앞에서 망부석 2탄을 찍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스마트폰 교환식에 유월이는 잔뜩 들떴다. 대리점 직원이 반갑게 맞이하자, 아이는 교환권을 번쩍 꺼내 들고 말했다.
"이거 주세요!"
직원은 피식 웃었고, 우리 부부는 숨을 몰아쉬며 한쪽 눈으로 직원에게 찡긋 윙크를 보냈다. 아차, 핸드폰을 손에 쥐어주기 전에 중요한 절차가 남아있었다. 사용법에 대한 약속을 받아내는 일.
"유월아, 엄마 아빠랑 약속할 거 있어."
"네, 뭔데요?"
"첫째, 하루에 1시간까지만 사용할 수 있어."
"둘째, 모르는 링크나 모르는 번호로 오는 메시지 절대 클릭 금지."
"셋째, 부모님이 체크할 때는 무조건 보여줘야 해."
잔소리를 하고 나니 부스러진 말소리가 아이의 오른쪽귀에서 왼쪽귀로 부슬부슬 떨어진다.
대리점 직원은 초등학생들이 사용하기 좋다는 기종 여러 가지를 늘어놓고 설명을 이어갔다. 결국 우리도 남들이 다 쓴다는 '국민아이템'을 고른 후에야 안심하면서도 동시에 구차한 마음을 일렁이며 스마트폰 구매 여정의 막을 내렸다.
그래, 나도 스마트폰 사줬다..
사진: Unsplash의freestock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