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1. 내친구 이뭉치
3대 악마견이 존재한다.
슈나우저, 비글, 코카스파니키엘이 그러하다.
난 그 3마리를 모두 경험해 보았다.
강아지를 좋아하던 엄마가 지인이 여행을 간다는 이유로
코카스파니키엘을 며칠 맡아주었던 적이 있었다.
다 기억나진 않지만 라면을 먹으러 달려들었고
오줌을 먹었던 기억이 있다.
다음으로 비글이다.
우리 쨔몽이가 비글이었는데, 쨔몽이는 지랄견에 속하지는 않았다.
엄마는 쨔몽이 같은 강아지라면 100번이라도 다시 키울 수 있다고 말할 정도로 영특한 친구였다.
사람 거리로도 먼 집과 가게의 거리를 찾아오곤 했으니, 정말 영특한 강아지였다.
그리고 슈나우저다.
나의 첫 강아지가 미니어처 슈나우저였다.
내가 9살쯤 처음 만나게 된 강아지다.
이름은 '바우'. 달려라 왕바우라는 애니메이션에 따온 이름이었다.
바우가 정확히 우리 집에 어떻게 오게 됐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반려견이란 인식이 자리 잡기 전이니
아마 애들이 심심해하니
누군가 키워보라고 주었을 것이다.
바우는 정말 미친 에너지의 소유견이었다.
쌀봉투고 뭐고 다 뜯어놓고, 화장실 하수구를 입으로 핥고,
미끄럼방지 매트를 다 뜯어 놓았다.
맞벌이인 가정에서 이 아이를 케어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래서 엄마는 고심하던 끝에
바우를 넓디넓은 포도밭을 운영하시는 분에게 보내기로 했다.
나와 오빠는 바우를 보낼 수 없다며 울고 불고 울부짖었다.
엄마는 바우를 생각하라고 우리를 야단쳤다.
이 작은 집이 바우에게는 좁았고 바우는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다.
엄마는 바우에게 더 나은 환경을 줘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앞으로 바우를 보내고 나면
강아지를 입양하는 일은 없을 거라고 못 박아 말했다.
한 생명을 끝까지 책임지지 못했기 때문에,
우리는 그럴 자격이 없다고 말했다.
나는 오열했지만, 바우를 생각해 보면
넓은 곳으로 가는 게 맞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눈물을 쿨적이며 첫 강아지 바우를 보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마주한 나의 두 번째 슈나우저 이뭉치
잊고 있었다.
바우의 에너지를
바우와 이뭉치는 같은 미니어처 슈나우저라는 것을,
3대 지랄견에 속한다는 것을 말이다.
'사고뭉치'라는 말 있죠?
그게 뭉치에요라는 말에 걸맞은 이름 뭉치
우리 뭉치는 정말 크레이지 한 에너지를 가졌다.
연애시절에도 뭉치의 에너지는 익히 들었지만,
한살이 넘어가고 나서 만났으니
뭉치는 하루 종일 놀자고 했고
나는 하루 종일 공을 던져주어야 했다.
모든 인형은 다 터졌고
모든 것을 물어뜯었다.
마당에 땅을 파고 사람이 지나갈 때마다 짖고
집에서도 계단을 뛰어내리고
계속 놀자고 툭툭 쳤다
이 에너지를 분출할 수 있는 것은 딱 하나 '산책' 뿐이었다.
뭉치산책은 항상 영어원어민인 신랑이 내내 함께 해주었고,
아갓쉬가 함께해 주었지만 이 시간이 뭉치에게는 부족했다.
퇴근 후 함께 가는 산책만으로는 이뭉치의 에너지를 감당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나 역시도 홀로서기 시간이 필요했다.
함께 살아가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나치게 의존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뭉치와 함께 산책하며 이 낯선 동네에 적응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렇게 시작된 뫼비우스의 띠
산책과 스몰토크
뭉치와 단 둘이 산책하는 것은 나에게 있어 큰 도전이었다.
진짜 생짜로 던져지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이 도전은 행복한 기억과 순간으로 남아져 왔다.
뉴질랜드 사람들은 대체로 친절한 편이었고
내가 사는 동네는 더욱 친절한 키위들
(뉴질랜드 사람들은 스스로를 kiwi라고 부른다)이 많았다.
특히 강아지를 키우는 사람들끼리는
산책하다가 반려견들끼리 인사를 하고 싶어 하거나,
싫어하거나, 짖거나 하기 때문에
약간의 스몰토크를 반드시 해야 했다.
난 이곳의 강아지들 산책 매너도 잘 알지 못했고
스몰토크도 할 수 없는 완전한 이방인이었으나,
엄연히 따지자면 키위인 이뭉치와의 산책 덕분에
낯선 해외에서 잘 적응할 수 있었다.
뉴질랜드에서는 강아지를 입양할 때에
장기체류 거주자에게 입양을 허가한다.
법적으로 영주권자만 가능하다고 명시되어 있는 것은 아니나,
비자 체류자격이 12개월 미만인 사람에게는 입양을 허하지 않으니
실제로는 영주권 이상의 사람들만이 강아지를 입양할 수 있는 셈이다.
즉, 반려견을 키운다는 것은
영주권 이상의 체류자격을 갖춘 거주민(Resident)이라는 뜻이기도 했다.
난 아니었지만, 뭉치와 함께 산책함으로써
거주민인 셈이 되었다.
뭉치는 이 낯선 나라에서 나에게 있어
하나의 보호막과 장치가 되어준 것이었다.
우리 뭉치는 그것을 알지 모르지만..
넓디넓은 숲길을 거닐다 보면
이따금 밀려드는 이 낯선 타국에서
뭉치는 내게 있어 무한한 용기가 되어주곤 했다.
뭉치는 다른 강아지를 무척 좋아한다.
소위 말하는 강아지 3대 미치게 하는 조건인
간식, 공, 친구 중에서 우리 뭉치는
친구 미친 견이었다.
그래서 산책 때 모든 강아지에게 인사를 하고 싶어 하다 보니,
나는 반드시 스몰토크를 해야만 했다.
매너상 다른 견주들에게 인사를 해도 괜찮은지 물어야 했고
뭉치가 이따금 흥분해서 짖어대면 미안하다고 사과해야 했다.
그렇지만 덕분에 많은 키위들과 스몰토크를 하며 웃을 수 있었고
영어를 말하는 것에 두려움이 사라졌었다.
나는 항상 내 영어가 poor(푸어, 가난하다)고 표현하는데
친절한 키위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너는 2개의 언어를 사용할 수 있지 않냐며 칭찬해주시기도 하고
영어가 그 정도면 충분하고 훌륭하다고 해주시기도 했다.
그 칭찬에 힘입어
그리고 나는 그들과 소통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한
자신감이 샘솟아서 그 무렵 막무가내 영어를 내뱉었는데
한 번은 내가 우리 뭉치는
다른 강아지를 좋아하는 표현을 거침없이 한다는 뜻인
'직진남'이라는 말을 하고 싶어서
"straight boy"라는 표현을 썼었는데
상대방 견주의 표정이 좋지 않은 적이 있었다.
나는 이유를 알지 못해 내 유머가 통하지 않은 것인가
좀 아쉬워하며 단어가 너무 한국스러웠나 하며 산책을 마쳤다.
집으로 돌아와서 원어민인 두 남매에게 이 일을 말하니,
둘이 크게 박장대소했다.
아가씨는 한참을 웃더니
"언니 그건 성적지향성을 나타내는 말이에요!"라고 말해주었다.
그러니까 나는 산책을 하다가 만난,
다른 강아지 견주에게
정말 밑도 끝도 없이 내 강아지가 동성애자라고
갑자기 아웃팅 한 것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럴 수가!
그제야 나는 상대방 견주의 표정을 이해했고
아가씨와 함께 박장대소하며 한참을 웃었다.
친구들에게도 카톡을 하며
오늘 있었던 에피소드를 전하면서
눈물을 흘릴 정도로 웃었다.
그렇게 서툰 영어지만
나는 그래도 뭉치 덕분에
산책과 스몰토크를 마스터할 수 있을 정도의
수준에 이르렀다.
이렇게 뭉치는 내가 낯선 타국 땅에서
적응할 수 있도록 나를 밖으로 이끌어 준,
가장 고마운 친구가 되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