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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를e Apr 24. 2021

슬기로운 병원생활
(feat. 실세의 등장)

네 번째 효도라면

엄마는 총 두 달을 중환자실에 있었다. 만 60일이었다.

의식이 깨어난 뒤에도 약 한 달 여가 지난 뒤에야 아버지와 나는 엄마를 중환자실로부터 돌려받을 수 있었다.


오늘 일반병실로 내려간다고요?


아침 출근길에 걸려온 중환자실의 급작스런 전화는 기다리던 합격소식을 들은 것 같았다.

중환자가 아니라 이제 회복을 하면 되는 상태를 일반 환자라고 한다. 신분이 상승는 기분이었다. 꿈에 그리던 일반병실. 최악의 상황에서는 벗어나고 있었다. 출근길. 사람 가득한 분당선에서 나는 다들 들으라는 듯이 큰 소리로 통화했다.


"네네, 그래서요. 언제까지 가면 될까요?"

출근길 지하철을 탄체 나는 서울 병원으로 향했다.


항상 면회시간에만 오던 중환자실 복도 앞에서 침대체 실려 나온 엄마를 받고, 준중환자실이라고 부르는 5인실로 향했다.


일반병실로 갔지만 당장 엄마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였다. 손가락을 까딱하거나, 긍정의 표시로 눈을 깜빡거리는 정도가 엄마의 신체기능의 전부였다.

그래서 그런지 내 눈에 다른 환자들은 어벤저스급 능력자들이었다.  


오른팔만 자유롭게 움직이시는 할머니

휠체어를 탈 수 있는 아주머니

스스로 일어나 앉아 있을 수 있는 할머니. 특히, 이 할머니는 말을 할 수 있었다.

나는 그저 그분들을 보며 연신 속으로 탄성을 뱉었다.


엄마도 저렇게만 되면 좋겠다.


인간의 세계는 어느 곳이나 구역이 정해지면 실세가 정해지기 마련이다.

병실에 오더를 주는 것은 의사. 집행하는 것은 간호사다. 다만 그들은 병실에 정해진 시간에만 들어온다.

따라서 그 외 간에 실세는 따로 있었는데 현재 이 준중환자실의 실세는

'오른팔만 자유롭게 움직이시는 할머니'의 간병인이었다.

그 실세가 내게 말을 건넸다.


"엄마예요? 어디가 아파서 오셨어요?" 억양이 센 경상도 말투였다.


나는 본능적으로 자세하고 친절하게 대답했다.

"두 달 전에 뇌출혈이 있었고요. 그래서 머리 수술만 두 번을 했어요. 그래서... "


실세는 경험에 비춰 이후 상황을 눈에 보듯 읊었다.

"아이고, 두 달 있었음 고생했겠다. 그래서 기도에 삽관을 했구나. 석션 환자네. 콧줄도 했고. 두 달 있었으니 근육은 다 빠져서 못 움직일 것 같고, 폐에 호스가 있는 걸 보니 폐렴도 왔었나 보네. 아이고 고생 많이 했겠다. 욕창도 있겠구먼. 손이 많이 가겠어." 진정한 실세였고, 프로였다.


그 사이 간호사가 들어와서 콧줄로 유동식을 넣는 법. 물 드리는 법. 석션해서 가래를 빼는 법을 알려주었다.

하지만, 나는 서툴렀고 어려웠다. 그리고 무엇보다 조금만 실수하면 엄마에게는 치명상을 줄 것 같았다. 순간 오전에 일반병실로 내려간다는 통보를 하며 간호사 쌤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간병인 있으셔야 해요! 가족이 못하실 텐데..."


간병인은 천천히 고를 요량이었는데. 너무 당연한 듯 말하는 간호사 쌤이 의아했었다. 하지만, 이제야 그 의미를 알았다.


잠시 후 스멀스멀 냄새가 올라왔다. 엄마였다.  

이래 봐도 애 둘 아빠다. 기저귀쯤이야. 생각했지만, 오산이었다. 엄마는 우리 아이들처럼 가볍지도 않았고, 몸도 굳어 있었다.


그때. 멀리서 지켜보던 실세가 다시 말씀하셨다.


"거기를 잡으면 안 되고, 저 위를 잡고... 아니.. 하이고 나와봐요."


전쟁 같은 일반병실에서의 하루가 지났다. 아니 일단 병실에 불이 꺼졌다. 9시.

뭔가 꿈의 장소였던 일반병실에서 하루가 내게는 너무 힘겨웠다. ( 그날 나는 한 숨도 자지 못하고 밤새 썩션으로 숨이 넘어갈 것 같은 엄마의 가래를 빼내야 했다.)


하지만, 그래도

엄마와 있을 수 있었다. 꿈만 같았다.


그래서 손을 잡았다. 꿈에 그리던 엄마 손을 꼭 잡았다.

전쟁터 같은 중환자실에서 두 달의 시간을 보낸 엄마의 손은 의외로 보드랍고 따뜻했다.  엄마의 손을 잡고 내 뺨에 부비부비 하는 것만으로 잃었던 지난 두 달을 보상받는 느낌이었다. 마흔이 넘은 나이지만, 이 순간 나는 그저 엄마의 아들이었다.  


깊게 잠든 엄마 옆에서 나는 그날의 첫끼를 간병인 침대 위에서 조용히 먹었다. 혹, 잠든 엄마가 깰까 봐.


'호로록, 호로록'


새우탕 큰 사발. 쫄깃한 면발에 시원한 국물 맛

오늘을 표현하는 듯한 맛이다.

쫄깃한 하루였고,

시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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