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낑깡 Feb 24. 2022

아보카도

씨가 반이라도 든든해요

아보카도와 낑깡 (1)

씨가 반이라도 든든해요


  아보카도는 내가 아는 사람 중 자아가 가장 단단한 사람이다. 아보카도를 보고는 단숨에 아보카도를 떠올렸다. 아보카도는 겉으로 보기엔 정말 질긴 사람이다. 깊은 초록색이 잘 어울리지만, 다가가기 차가운 인상이다. 하지만 실상 열어보면 한 없이 부드러운 사람이다. 숙성이 잘 된 아보카도가 크림처럼 부드럽듯이, 좋아하는 사람에겐 한 없이 부들부들한 사람이다. 그러나, 열어보지 않고 지레짐작하면 차가운 사람처럼 보인다. 실상은 정말 한 없이 부드러운 사람인데.


  아보카도는 씨가 반인 과일이다. 그리고 그 씨가 엄청 단단하다. 아보카도는 자신의 영역이 확고하고 단단하다. 자신의 자아가 크고 건강한 사람이다. 그래서 아보카도다. 아보카도는 늘 나에게 단호하게 말해준다.


  "낑깡아. 네가 고민할 일이면, 네가 고민하기 전에 상대방이 먼저 말했을거야."


  아보카도는 내가 낑낑대고 있으면 어떻게 알았는지 찾아와 이렇게 말한다. 그럼 나는 푹 잘 수 있게 된다. 아보카도는 매번 단단한 자아를 내게 나눠준다. 그러고 나서도 자기만의 단단한 영역은 그대로다. 아보카도가 자신의 부드러운 속을 다 내어줘도, 자신의 대를 이어나갈 커다란 씨앗은 내어주지 않는 것처럼. 아보카도도 그렇다. 아보카도의 것을 마음껏 퍼가도, 딱딱한 씨앗만은 커다랗게 자리하고 있어서 내가 마음껏 퍼가도 끄떡없다. 그래서 아보카도와 함께 있으면 나도 아보카도처럼 단단하고 부드러운 사람이 된 것 같다. 실상은 아보카도 속 낑깡인데, 아보카도 안에서 나도 아보카도처럼 된 것처럼. 하하. 나도 아보카도라고! 이렇게 행복한 상상을 할 수 있다.


  아보카도에게 이 글을 보여줬을 때의 반응을 상상한다. 하하, 재밌네. 그래, 올려. 이렇게 말할 것 같다. 아보카도는 아보카도니까. 혹시 몰라, 근데 낑깡아, 하고 나에게 무언가 말해줄 지도 모른다. 아보카도는 '잔소리'라고 칭하는 그 말. 아보카도는 에휴, 계속 잔소리해서 애가 질리면 어쩌지?라고 생각할 테지만, 나는 또 실 없이 감동하고 말겠지. 아보카도, 그래서 난 아보카도가 좋아! 그럼 아보카도는 질색하겠지. 그렇지만 내심 그런 나를 좋아할 거라고 믿는다. 아보카도의 부들부들한 속을 먹고 자란 나는 귤처럼 커다란 낑깡이 되었고 아보카도는 전보다 작아졌으니까. 그렇지만 나보다 훨씬 단단하겠지, 그리고 이내 다시 아보카도로 태어나겠지. 언제 작아졌냐는 듯이. 아보카도는 무럭무럭 또 부드러워지고 또 딱딱해지고 내내 그것을 반복하겠지. 그래서 아보카도가 좋다. 내가 아보카도를 다 먹어치워도, 딱딱한 씨앗만큼은 내내 아보카도의 것일테니까.


* 이 글은 아보카도의 허락하에 게시되었습니다.

* (1)이 붙었지만 시리즈가 이어질 지는 확실치 않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용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