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CM의 10월의 날씨를 듣고
나는 이 노래를 듣고, 정확히 두 번 울었다.
첫 번째는 고3 때였다. 우리 학교는 보충수업과 야자가 강제였다. 야자는 사정사정해서 빼고, 입시를 위해 학원을 다녔다. 야자를 뺐어도, 보충수업을 듣고 밥을 먹고나면 수업엔 20~30분 지각했다. 학원 선생님께 양해를 구했으나, 그 20~30분 동안 배우지 못할 것이 아까워서 나는 늘 밥을 5분 만에 욱여 넣고 버스 정류장까지 뛰었다. 가파른 오르막길을 우다다다 뛰어내려 갔는데, 일기예보와 다르게 비가 내렸다. 우산을 펼칠 겨를도 사치였다. 나는 쏟아지는 장대비를 맞으며 뛰었다. 간발의 차이로 버스를 놓쳤다. 다음 버스는 15분 뒤에 온다고 했다. 15분. 나는 버스 정류장에 앉아 MP3를 들었다. MP3에서는 '10월의 날씨'가 흘러나왔다. '빗물이 내리면 눈물이 흐르는 사연 하나 없는 사람 없으니까요' 그 순간 눈물이 뚝뚝 흘렀다. 15분. 그깟 15분이 뭐라고 나는 밥도 사람처럼 안 먹고 살아가는지. 고3은 사람도 아니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지만, 정말 나는 사람이 아닌가. 대학도 못 가면, 공부 못하면 정말 사람 아닌가. 매섭게 내리는 비보다도 서럽게 울었다.
두 번째는 엄마를 떠나보내고 나서였다. 내내 호스피스 병동에 있었던 나는 계절감이 사라져있었다. 엄마와 함께 호스피스에 들어갔던 무더운 여름 그때 그대로. 엄마가 떠나자 날씨도 어느새 쌀쌀해져 있었다. 나는 생경스러웠다. 덩그러니 버려진 느낌이었다. 반팔을 입어 그대로 노출된 팔에 닭살이 돋았다. 트렌치코트를 입은 사람들 사이에서 나 혼자 반팔이었다. 나는 어디로 가는지 모르고 그냥 하염없이 걸었다. 내내 걸었고 지독한 감기에 걸렸다. 어렸을 때부터 자주 다니던 동네 병원에 갔다. 의사 선생님이 오래간만에 왔네요,라고 말씀하셨다. 그냥 의례적으로 하는 말인 줄 알았는데 의사 선생님은 나를 기억하고 계셨다.
"아직도 알약 잘 못 먹어요?"
나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사 선생님은 약을 작게 쪼개 주셨다. 그 약봉지를 들고 걷는데, 문득 '10월의 날씨'가 생각났다. '용기를 내 거리를 나와보니 괜히 나만 우울했나 봐 젖은 우산 같은 맘도 마를 것 같아 기분 좋은 남들처럼 아름답기만 한 하루가 이제 시작될 줄 알았는데', '고갤 들어 주위를 둘러보니 괜히 나만 우울한가 봐 사람들은 하나 같이 웃는 것 같아', '사람들이 이상한 건지 아님 이상하게 나만 슬픈지 나 어떡하지 어디로 가지'. 가사 하나하나가 머릿속을 계속 맴돌았다. 분명 우리 엄마는 떠났는데 왜 지구는 이상하리 만큼 멀쩡한지. 내 마음은 썩어 문드러져 가는데 왜 육신은 멀쩡한지. 피 한 방울도 왜 안나는 지. 그게 너무 억울하고 분해서 울었다. 돌아오는 내내 울었다. 그랬더니 아이의 손을 꼭 잡고 걷던, 엄마와 비슷한 또래의 아주머니 한 분이 나를 걱정스럽게 쳐다보았다. 왜 이렇게 천천히 걷냐는 아이의 말에도 내가 스쳐 지나갈 때까지 내내 천천히 걸으며 나를 쳐다봐주셨다. 그 마음이 더 슬퍼서 눈물이 흘렀다.
이 노래를 너무 좋아했지만, 어느 사이 못 듣게 되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니 점점 고3 때의 나의 마음을 잊고 싶지 않아, 엄마를 떠올리고 싶어 이 노래를 간간히 찾아 듣게 되었다. 기억하기로 한다. 어떤 일이 하더라도 사람처럼 살지 않으면서까지 하진 말기로. 죽을 만큼 열심히 해야 할 일은 세상에 없음을. 그리고 엄마를 예쁘게 추억할 수 있기를. 내내 연습해야지. 비가 우울을 부르더라도, 언젠가 반드시 그 우울은 그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