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내심 속 시원함
코코넛은 내가 아는 사람 중 가장 시원시원하다. 큰 키와 기럭지는 물론, 성격도 외모답게 시원하다. 마음에 담아두는 것이 없다. 무언가 속이 상한 일이 있으면 먼저 다가와 묻는다. 소심한 나는 처음엔 코코넛이 무서웠다. 누군가를 사랑할수록 내 마음을 꽁꽁 싸매는 나와 달리, 코코넛은 사랑하는 사람일수록 솔직하게 대했으니까. 나는 코코넛을 통해 솔직함의 미덕을 배웠다. 누군가는 코코넛의 솔직함을 폄하했다. 하지만 코코넛은 그래도 늘 자신의 솔직함을 잃지 않았다. 누군가 자신을 미워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럴 수도 있지~. 하는 시원함이 있었다. 그래서 난 코코넛이 좋다.
코코넛과 만나면 어떤 이야기든 할 수 있다. 누군가는 무거워서 싫어하는 이야기를 코코넛은 묵묵히 듣고 답해준다. 답변도 시원시원하다. 누군가는 그 시원함이 너무 차갑게 느껴질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코코넛의 진심을 알기에 코코넛의 답변은 시원하고 달콤하다. 그래서 코코넛과 이야기하는 것은 늘 즐겁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코코넛과 이야기한다. 코코넛과 이야기하고 나면 내 속 깊은 곳이 후련해진다. 마치 무인도에서 발견한 단 하나의 음료, 코코넛 열매처럼.
코코넛은 단단한 과일이다. 껍질이 단단하고 질겨서, 까먹기 참 난감하다. 하지만 인내심을 가지고 열심히 껍질을 까고 나면, 달콤하고 시원한 과즙과 말랑한 식감의 과육이 재밌는 과일이기도 하다. 가끔 꽝인 코코넛도 있다. 열심히 깠는데 상한 건지 이상한 맛이 나는 코코넛. 그런 면까지도 코코넛을 코코넛이라고 부르고 싶다. 코코넛은 시원하고 달콤한 성격 그대로지만,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다른 사람이니까. 껍질을 내가 열심히 깠다고, 그럼 응당 달콤하고 시원해야 하지 않겠냐고 우기는 사람에게 코코넛은 매정할지 모른다. 하지만 묵묵히 코코넛의 껍질을 까고, 또 까고 또 까내면 이내 달콤한 과즙이 당신을 반길 것이다.
멀리서 온 과일이니까 상한 것이 당연히 한 두 개 있는 것처럼, 코코넛도 사람이기에 가끔 코코넛의 딱딱한 시원함이 서운할지도 모른다. 나도 처음엔 코코넛에게 알게 모르게 섭섭한 일이 많았다. 그러나 코코넛은 내가 이야기하면 기꺼이 들어주는 사람이었고 자신의 생각을 나누고 사과하고 때론 나를 질책해줄 수 있는 사람이었다. 코코넛의 딱딱한 껍질을 보고 포기한 사람은 나였을 뿐. 코코넛은 잘못이 없다. 코코넛을 멀리서만 보고 오해하는 사람이 나쁘다. 누군가의 겉을 보며 재단당하는 사회 속에서 코코넛이 코코넛만의 시원함을 내내 간직할 수 있기를. 그것을 위해 나는 어떤 노력이든 할 것이다.
* 이 글은 코코넛에 허락 하에 게시되었습니다.
* (1)이 붙었지만 시리즈가 이어질 지는 확실치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