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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가 왜 하필 소방관이야?"

누구나 말못할 사연을 안고산다.

나는 내가 스스로 소방관이 될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다.

흔히들 여성소방공무원이라하면 응급구조사나 간호사 자격을 갖춘 능숙한 구급대원들을 떠올리겠지만 나는 화재경방 공채로 합격했다. 많은 여성 구급대원들 틈바구니들 속에서 '불끄는' 화재경방을 하려니 쉽지않았다.

그렇다고 내가 체격이 좋은 직원도 아니다.

키 160cm에 몸무게 50kg!


고등학교 때 장래희망을 적으라고 하면,

나는 늘 '교사' 아니면 '공무원'이라고 적었다.

하지만 ‘소방관’은, 정말 단 한 번도 떠올려 본 적이 없었다.

그러면 어쩌다 나는 소방관이 되었을까?


대학교 졸업 후, 나는 2년 동안 일반직 9급공무원 시험을 준비했다.

공부는 힘들었고,

한 번 또 한 번의 불합격은 점점 자신을 의심하게 만들었다. 지금 생각하니 9to11로 열심히는 했으나 기출위주의 공부를 요령껏하지 못했고 5과목 시간 배분이 잘 안되었다. 그리고 몇몇 지엽적인 문제로 1~2문제로 떨어지니 점점 심리적으로 피폐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행정학과 선배가 말했다.

“이번에 소방직 많이 뽑는대.

체력은 되니 너도 해볼 만할걸?”


나는 그 말을 가볍게 흘릴 수 없었다.

공무원 뭐든 하나는 붙어야겠다는 마음.

그게 내 선택의 진심이었다.


어쩐지… 괜찮을 것 같았다


'소방직'이라고 해도,

다 현장에 나가는 건 아닐 테고,

행정업무도 분명히 필요할 테고,

거기서도 나 같은 사람이 필요할 거야.


그렇게 스스로를 납득시켰다.

더구나 25살,

이른 합격은 오히려 더 많은 선택지를 줄 것 같았다.

"설마, 불 끄다 죽겠어?"

나는 그렇게 행정학 대신 소방학개론 '한 과목만 바꾸면 되는 시험'에 도전했다.

일반직9급을 준비하면서 쌓은 실력을 활용할 수 있었고,

소방학개론이라는 단 하나의 생소한 과목만 새로 익히면 됐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내가 스스로 나에게 했던 말이 떠오른다.

“설마 불 끄다 죽겠어?”

지금은 그 말이 얼마나 무모한 자기합리화였는지 안다.

정말 현실은 달랐다.

소방 조직은 철저히 남성 중심의 문화였다.

나는 여고와 대학에서도 여학생만 많은 영문학 전공의 여성이었고,

게다가 현장근무에 대한 위험성 개념도 무지한 여성이었다.


그게 내인생에서 어떤 영향을 가져오는지,

그 안에서 얼마나 더 많이 증명해야 하는지,

나는 곧 깨닫게 됐다.


그리고 지금 나는, 돌아보고 있다


그렇다면 나는 왜 이 길을 선택했을까?

어쩌면 그건 선택이 아니라 생존이었는지도 모른다.

붙어야 했고, 먹고살아야 했고,

조금이라도 빠른 정착이 절실했던 시기였다.


그래서 이 글을 쓴다


누구나 최선이었지만, 돌아보면 우연이었던 선택들.

그런 이야기 하나쯤은 있지 않을까?


나는 오늘,

그 ‘우연’이 ‘운명’이 되어버린 순간을 기록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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