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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경재 Mar 13. 2023

앙(仰) 이목구심서 ㅣ

매화와 어르신


간밤에 어둠이 울고 갔나 보다.
홑이불처럼 휘날리던 대지가 온통 젖어있다.
축축한 그 길을 걸어 출근하자마자 텅 빈 식당에 들어선다.

어르신의 아침 식사를 위해 세팅을 하기 위해서다.
식탁 하나가 곧바로 눈에 들어온다.
다가가 보니 매화나무 가지가 화병에 꽂혀 있고 몇 송이의 꽃이 이미 활짝 웃고 있다.
1월 중순인데 벌써 꽃을 보게 되다니 생각지도 못한 선물을 받아 든 기분이다.
시비 거는 강바람을 상대하며 걸어오는 출근길이라 차갑게 굳었던 몸뚱이가 와르르 녹아내린다.
내 얼굴에는 배시시 웃음이 피어오른다.
곧바로 창문을 열어 멀리 건물 밖의 나무를 확인한다.
하얀 꽃점들이 손을 흔들고 있다.
요 며칠 봄날처럼 따뜻하더니 그새 매실나무는 꽃을 피워내었다.
이것을 알아차린 어느 직원이 곧바로 식당에 데려와 이 기쁜 소식을 전한 것이다.


봄꽃을 식당에 들고 온 직원의 마음을 생각한다.
그는 촉촉이 젖어있는 사람이다.
봄기운에 이미 배어있던 그는 누구보다 먼저 봄을 느끼고 알아보았다.
또한 그는 따뜻한 가슴을 가진 사람이다.
매화는 삭막한 식당을 환하게 밝혀 추위를 밀어내어 버렸다. 생기를 잃어가고 추억마저 고갈되어 가는 고령의 어르신들은 꽃을 보며 더욱 기뻐한다.
꽃처럼 얼굴이 핀다.
뒤안의 장독대 곁에 선 매화나무와 달콤한 향에 속아 한 입 베어 물던 아이를 떠올리며 입안 가득 추억이 고일 것이다. 꽃을 반기지 않는 사람은 없었다.
누구나 꽃을 보면 보이지 않던 희망과 설렘이 되살아난다. 그렇기에 매화를 식당에 초대한 직원에게 감사하다.
나도 이렇게 마음 따스한 직원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누군가에게 꽃이 되지 못하더라도 희망을 보여주고 전달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반복되는 일상 안에서 하찮게 보이더라도 웃음과 감동을 전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이다.


나는 꽃병을 들고 다른 식탁들에 가져가 어르신의 눈앞에 놓아 드린다.


"어르신, 이것 좀 보세요. 매화가 피었어요! 향기도 아주 진해요!"


어르신은 눈동자에 들어온 매화를 한동안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매화는 그분의 가슴에 들어가 자리를 잡고 줄곧 피어있을 것이다.
바라건대 어르신 모두의 가슴에 꽃이 하나씩 뿌리내렸으면 좋겠다.
매일매일 마음의 정원에서 그 꽃을 가꾸고 보살피며 사셨으면 좋겠다.
꽃잎을 어루만지고 그윽한 향기에 취하기도 하며 주위 다른 이들과도 서로의 꽃을 주고받는 하루하루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어느 마지막 날에 꽃과 함께 떠나실 수 있다면 그분 삶의 자취는 아름다울 것이다.
남아있는 이들은 오래도록 그를 기억하리라.
향기로운 사람이었다고.


나는 모든 이들의 가슴속에 살고 있는 꽃잎들이 상처받지 않도록 돕는 손길이고 싶다.
때때로 주위를 돌아보고 벌레를 잡아주며 뙤약볕에서는 손그늘을 해주는 그런 존재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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