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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경재 Mar 13. 2023

앙(仰) 이목구심서 2

꽃봉산에 올라

꽃봉산 정상에 섰다.

꽃봉산은 산청 읍내에 있는 237미터의 자그마한 산으로 정상에 전망대가 있다.

계절은 겨울이지만 이백여 미터 더 태양에 다가섰다고 따스한 햇볕이 품 안으로 쏟아져 들어온다.

어느 봄날 남향의 처마 밑에 앉아있는 것처럼 편안하고 나른하여 기분이 상쾌하다.

읍내가 선명하게 내려다보인다.

오밀조밀 붙어있는 집과 상가들 가운데 몇몇 아파트와 관공서들이 우뚝 솟아있다.

거북의 등처럼 바닥에 낮게 깔려 서로를 가르던 벽이나 담은 보이지 않는다.

집집이 맨살을 맞대고 있어 마을은 순하고 따뜻해 보인다.

내려다보이는 각각의 삶은 작고 보잘것없어 보인다. 그러나 저 안에서 어떤 역사가 무수히 싹을 틔우며 콩나물처럼 성장하고 있을 것이다.

 산청은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이다.

마치 커다란 둥지에 들어앉아 있는 비둘기알처럼 마을들이 모여있다.

핏줄처럼 이리저리 놓인 도로 위로 생쥐만 한 자동차들이 오간다.

어지럽게 늘어진 도로의 줄기를 따라가다 보면 어김없이 산이 나온다.

산기슭으로 걸어 들어간 길의 끝엔 작은 절이 앉아있거나 외따로이 주택의 붉은 지붕이 놓여있다.

사방으로 병풍처럼 서 있는 산의 능선과 계곡이 선명하다.

수만 년 동안 잠들어 있는 스테고사우루스의 등처럼 근육이 우락부락한 곳은 서쪽의 웅석봉이다.

능선이 날카롭고 경사가 심하여 곰이 한눈팔다가 넘어지면 산아래 마을에까지 굴러 떨어질 것만 같다. 동쪽의 둔철산 능선은 상대적으로 완만하고 부드러워 편안한 느낌을 준다.

군데군데 희끗거리는 바위들이 머리카락처럼 보여 산의 나이를 상상하게 한다.

북쪽의 황매산 방향으로는 여러 개의 작은 산들이 연이어 놓여있다.

걸리버의 거인이라면 산을 징검다리 삼아 황매산까지 금방 건너갈 수 있겠다.

오뚝한 필봉과 왕산 뒤로 멀리 지리산 자락이 보이고 천왕봉 능선이 이어진다.

먼발치에서 어머니 산은 줄곧 산청의 강과 마을을 지켜보고 있다.

북에서 남으로 읍내를 가르며 웅석봉 앞을 흐르는 강줄기를 따라 산이 길게 엎드려 있다.

갈증을 해결하고자 강가로 내려와 강물을 마시고 있는 산들을 본다.

그리고 경호강은 입춘에 찾아온 햇빛을 크게 환영하듯 하얀 손바닥을 마주치며 박수를 보내고 있다.

이 갈채는 눈에 부셔 똑바로 바라볼 수 없다.

강은 읍내 마을들을 휘젓듯이 몸을 비틀었다. 지금이라도 꼬리를 들어 요동칠 것만 같다. 이처럼 강은 살아있다.

강의 곡선은 생명을 지니고 있다는 확실한 증거이다.

이 곡선에 삶이 깃들어 산다.

크고 작은 마을이 강변에 눌러앉아 숨 쉬고 있다. 그러고 보니 살아있는 모든 생명은 원을 닮았다.

물고기도, 사람도, 달도 휘어져서 타원이다.

강은 차가운 고속도로처럼 일직선이 아닌 곡선으로 살아야 한다고 몸으로 말하고 있다.

곡선, 즉 둥글게 사는 것이 바로 성숙하고 잘 익은 삶이며 많은 이들이 지향하는 이상이다.

꽃봉산 전망대에서 삶을 내려다본다.

산과 강과 사람과 나무, 건물이 보인다.

갑자기 하늘 높이 날아오른 멧비둘기 한 마리가 숲의 품으로 들어간다.

고단한 하루, 잠시 멈추고 집을 찾아간 것이리라.

나도 이젠 아쉬운 마음을 산의 전망대에 세워둔 채, 마을로 내려가 인연의 정글로 돌아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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