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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경재 Aug 10. 2023

때 늦은 후회

앙(仰) 이목구심서Ⅱ-9

10일 아침, 비바람이 거세지고 있다.

어제는 비만 내리더니 이제는 바람도 함께다.

나뭇가지들이 중심을 잃은 가오리 연처럼 종횡무진 심하게 요동친다.


강가에 터를 잡은 성심원은 큰 비가 오거나 태풍이 불면 근심 많은 청개구리처럼 울지 않을 수 없다.

물이 다리를 삼켜버리거나 강변도로를 점령하고 시위하는 군중처럼 모든 것을 휩쓸어 가지나 않을지 하는 두려움이 항상 남아있다.


창문을 열어 강물을 바라본다.

흙탕물을 가득 채운 거대한 열차가 성난 몸짓으로 굉음을 내며 지나가고 있다.

연이어 달려 나가는 열차는 끝이 없다.

아무리 기다려봐도 꼬리를 볼 수 없을 만큼 장대하다.


며칠 전부터 태풍이 내륙을 관통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래서 어제부터 텃밭을 확인했다.

토마토 순을 주고 가지를 묶다.

고추나무는 하나하나 지줏대에 매여있어 비교적 안심이 된다.

옥수수는 이제 생산을 마쳐 빈 몸이니 괜찮다.

감나무야 수십 년을 살아왔으니 이번 태풍에도 자리를 뜨지 않고 든든히 서 있으리라.

문제는 사과나무다.

서른 개 정도의 풋열매를 키우느라 이미 허리가 구부정하다.

기울어진 줄기를 잡아당겨 말뚝에 잡아매어 허리를 곧게 펴 주었다.

이 정도로 괜찮을까 걱정이 되었지만 할 수 있는 만큼 했다고 자위하며 발길을 돌렸다.


집 주변을 돌아보았다.

쓰레기봉투와 날아갈 만한 것들은 미리 치웠다.

늘 열어 두었던 보일러실의 창문도 닫았다.

아, 수돗가에 놓아둔 항아리가 여럿 보인다.

플라스틱 뚜껑이 위험하다.

불안해하는 항아리를 안심하라고 돌덩이로 눌러주었다.


결국 태풍이 오고야 말았다.

바람이 더 거칠어졌고 비도 세차게 내리고 있다.

아침에 미닫이 문을 여니 날벌레 수십 마리가 안으로 들어왔다.

이미 방충망과 문에는 무수히 많은 깔따구들이 군단을 이룬 채 붙어있었다.

산과 마을에 사는 모든 깔따구들이 모여든 것처럼 문은 새까만 점들로 도배되다.

놀랍고 징그러워 마루에서 홈키퍼를 들고 와 불청객들을 향해 뿌려댔다.

소리가 없다.

아무런 비명도 저항도 없이 바닥에 우수수 떨어졌다.

너무나도 가벼운 존재들이었다.

그렇게 아무런 감정 없이 '그 일'을 마치고 곧 잊어버렸다.


출근 후 식당에서 몰아치는 비바람을 보고 있자니 불현듯 생각이 났다.

어젯밤에 깔따구들은 태풍을 피해 집 처마 밑에 모여들었다.

그들은 거센 비바람을 막아줄 피난처로 여겼던 것이다.

그런데 든든한 믿음의 성벽은 잔인하게도 무너져 버렸다.

한마디로 청천벽력이었다.

위험을 피해 안전한 곳을 찾아왔는데 곳이 오히려 죽음의 구렁텅이였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돌을 던졌다.

그러나 그 돌에 무수한 생명이 쓰러져버렸다.

죽지 않아도 되었는데, 그냥 놔두었으면 알아서 날아갈 것인데 보기 싫다고 함부로 행동을 했다.

파리나 모기처럼 딱히 우리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데, 어리석었다.

한없이 서글펐다.

나의 가벼움으로 인해 꺼지지 않아도 될 생명의 불이 안타깝게 사라졌다. 

돌이킬 수도 없다.

제발 앞으로하찮은 미물이라도 소중히 여기자.

그들도 한 번뿐인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들도 세상을 여행하며 맛보고 즐겨야 한다.

"미안하구나, 깔따구들아!"


오후가 되니 비는 멈추었고 바람도 다.

이번 태풍은 고맙게도 별다른 피해를 주지 않았다.

한센 어르신이 말씀하신다.

"태풍이 여기는 지나갔고 지금은 김정은이를 만나러 가고 있데~"

하고는 환하게 웃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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