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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경재 Aug 14. 2023

매미가 가을을 부른다

앙(仰) 이목구심서Ⅱ-10

매미가 가을을 부른다


작열하는 태양에도 시간은 거침없이 정오를 향해 달린다.

목마른 이파리는 고개를 떨구고 직선으로 쏟아지는 햇살을 조금이라도 빗겨 나고 싶어 몸을 비튼다.

이 치열한 나무의 그늘 안에서 매미가 오늘도 발성연습을 한다.

소리성악가처럼 맑고 푸르고 깨끗하다.

늘 들어도 거부감이 없다.

데시벨 높은 소리를 매일매일 가다듬었기에 저런 청아한 노래로 바뀌었다.


매미의 노랫소릴 듣고 있노라면 물소리가 들려온다.

때로는 잔잔한 시냇물이, 때로는 나무를 뒤흔드는 폭포소리로 인해 등줄기가 서늘해지기도 한다.

큰 물줄기가 한꺼번에 쏟아져 내려 온몸에 뭍은 더위를 쓸어내 버리는 느낌이다.

그래서 한 여름의 매미소리는 잠시나마 숨 돌릴 여유를 주고, 피할 데 없이 조여드더위에 구멍을 낸다.

소리는 더위 사이에 돋아난 틈새다.


매미들의 노래로 인해 여름은 서둘러 떠나고 싶어 한다.

송곳처럼 뾰족한 일부의 매미소리는 하늘의 엉덩이를 끊임없이 찔러댄다.

퍼렇게 멍이 들어갈 때마다 하늘은 높이, 더 높이 엉덩이를 들어 올린다.

넓어진 하늘엔 몸집이 큰 가을이 들어와 자리 잡게 될 것이다.


매미로 인해 참나무 그늘이 진동한다.

떨리는 그늘은 파도처럼 출렁이며 마당을 건너와 문지방을 넘어선다.

어느새 방 안에는 그늘이 가득 들어차고 어두워진 만큼 시원해진다.

어쩌면 이 떨림이 공기를 흔들어 바람을 만들어내는 거라고 생각한다.

여름날의 모든 바람은 매미의 노래에서 시작한.

나무 안에서 떨던 그늘은 너울거리다 파장이 커지고 공중에 피어올라 하늘에 가 닿을 것이다.

이렇게 울림의 파장이 중첩되면서 하늘을 조금씩 밀어 올린다.

대지와 지구의 천장 사이가 벌어지니 하늘은 높고 푸르다.

그러므로 매미의 노래는 가을을 부르는 소리다.

노래 맹렬해지는 만큼 가을이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다증거다.


매미는 왜 이다지도 노래에 열심인가.

오후가 되니 여기저기서 더욱 요란하다.

바람이 소리를 업고 왔다가 내게 모두 쏟아놓고 떠나간다.

아니, 소리가 바람을 몰고 왔다가 면전에서 고삐를 놓아 풀어준다.

바람이 한바탕 머물다 사라진.


매미는 삶이 온통 울음이다.

하지만 그 누가 매미의 삶을 슬픔이라고 말하겠는가.

듣는 이에 따라 노래일 수도, 소음일 수도, 위로일 수도 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다.

기쁨과 행복보다는 상대적으로  커 보이는 어두운 감정들과 막막한 현실이 앞에 놓여있다.

도 매미처럼 울고 싶다.

언제 매미보다 크게 울어 봤던가.

무엇에 온 열정을 쏟아부었던가.


비록 온몸과 마음으로 운다 해도 그렇다고 삶을 슬픔뿐이라고 말하지 않겠다.

매미처럼 사랑과 희망을 알고 우리의 슬픔은 유한함을 안다.

끝이 있기에 희망적이다.


매미의 노래 아래에 앉아있다.

하늘이 더 깊어간다.

가을이 곧 도착할 것 같은 데 마중은 언제 가야 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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