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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경재 Aug 26. 2023

누구인가?

앙(仰) 이목구심서Ⅱ-11

누구인가?



간밤에 밤손님처럼 소나기지나갔.

앞 산은 운해에 사로잡혀 무인도 마냥 외따롭고 신비롭다.

가까이 아름드리 상수리나무가 싱그럽다.

그런데 나무 발치엔 덜 여문 상수리 푸른 가지채 떨어져 있다.

바닥은 온통 푸른 나뭇가지로 어지럽다.

 꺾여 떨어진 잔가지들에서 풋내가 올라온다.

그들은 갑작스러운 추락에 황망하여 할 말을 잊고 다.

간밤에 나무를 흔들던 비바람이 남긴 생채기인가.

익지도 않은 상수리와 생가지는 왜 바닥을 뒹구는가.


알고 보니 지혜이다.

다시 보니 흐뭇하다.

진화가 만든 선택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이미지에서 가져옴

주인공은 도토리거위벌레다.

도토리거위벌레는 덜 익어 연한 상태인 상수에 알을 낳고선 다람쥐 등 주변의 위험에서 새끼를 보호하고자 나뭇가지를 잘라내어 땅에 떨어뜨린다.

떨어진 상수리 안에서 2주 후 알을 깨고 나와 아늑한 집이 되었던 연한 상수리를 먹으며 성충으로 우화하게 된다.

이렇게 도토리거위벌레는 본능적으로 끊임없이 참나무 가지를 이용해 자손을 이어간다.


바닥에 아무렇게나 떨어진 덜 여문 상수리는 생명을 품은 태반이요 자궁이다.

그래서 이젠 함부로 밟을 수 없다.

오히려 피해서 돌아가게 된다.

침묵 중인 하나하나가 위대한 생명을 잉태하고 있기 때문이.


누구일까?

처음 이 기막힌 묘수를 알아내고 전파한 벌레는.

틀림없이 처음 시작한 ''가 존재했다.

우리 인간이라면 개척자나 모험왕이라 불리며 후손들의 찬사를 받았을 것이다.

이 지혜가 모두에게 전달되고 DNA에 각인되어 다음 세대에 유전이 어왔다.

이제는 누가 말해주지 않아도 참나무에 올라가 상수리에 알을 낳고 가지를 잘라 땅에 떨어뜨릴 줄 안다.

한동안 최초의 '그'가 내게서 떠나지 않는다.


사각사각사각.

나무 어디선가 가지를 베어내는 치명적인 몸돌림푸른 그늘이 깊어간.

모든 추락에는 이유가 있다.

때때로 살기 위해 떨어져야 한다.

갑작스런 추락에 어리둥절한 상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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