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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경재 Jul 31. 2023

빨래 널기 좋은 날

앙(仰) 이목구심서Ⅱ-8


칠월의 꼬리가 맵다.

32폭염경보다.


한낮의 태양에도 감나무 이파리는 참기름을 두른 듯 싱싱하고 매끈하다.

그 안에서 매미들의 노래는 더위보다 더 맹렬하게 나무를 흔들고, 나무 위를 흐르는 구름은 갓 나온 솜사탕처럼 깨끗하고 순하다.

꼬마 주먹만큼 커진 사과는 햇볕에 마냥 서 있다.

불볕더위라지만 달리 피할 데가 없다. 뿌리가 없어 가볍기만 한 존재들은 서둘러 그늘을 찾아가지만 대지에 깊이 뿌리박고 사는 나무는 다 받아들이고 있을 뿐이다. 손가락을 오므리거나 고개를 돌려 싫어하는 기색 없이 침착하면서도 당당하게 서 있다.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라는 을 몸으로 실천하고 있다.


간간이 불어오는 바람에는 입김처럼 더운 열기가 묻어있다.

그래도 반바지를 입어 드러난 종아리나 이미 더위에 포위된 이마는 기분 좋게 시원해진다.

습기 없이 건조한 바람이라서 괜찮다.

마당에 나와 처마밑에 있어도 견딜만하지만 볕에 나갈 엄두는 나지 않는다.

수돗가의 봉숭아는 더위 먹은 강아지처럼 혀를 길게 늘어뜨리고 지쳐있다.

고개를 곧추세우고 팔간 손톱을 자랑하던 이른 아침나절의 그 기개는 찾아볼 수 없다.

금방이라도

"너무 더워서 눕고 싶어요"

라는 애처로운 호소가 들려오는 듯하여 나는 뾰족한 대책이 없기에 시선을 재빨리 옮긴다.

옆에 선 코스모스는 그래도 나은 편이다.

가느다란 이파리여서 그런지 허리를 꼿꼿이 펴고 흐트러지지 않는 자세를 유지하고 있다.

평소처럼 숙녀다운 품위를 지키느라 애쓰고 있어 편하게 있어도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어진다.

"얘, 이제 안 볼 테니 그만 쉬어~"


가로로 금을 그어 세상을 양분하고 있는 빨랫줄에

식구들의 지난 하루를 고스란히 기억하는 수건과 옷가지들이 앉아있다.

대지의 호흡인지 한숨인지 가끔씩 이는 바람에 옷이 너울너울거린다.

땀 흘리며 걷던 어제가 빨래 속에서 몸을 흔들며 날아올라 창공으로 사라진다.

어제가 떠난 빨래엔 흰 그림자들이 생채기처럼 고여있다.

햇볕아래 새하얗다.


얼룩이 짙을수록, 땀이 많이 고인 데 일수록 빨랫줄에서 빛이 나고 선명해진다.

내일 아침엔 다시 저 옷을 입고 땀 흘리겠다.

어쩌면 맨바닥에 주저앉아 흙이 묻을 것이다.

날 선 모서리에 걸려 실밥이 뜯어지겠다.

그러다 다시 빨래가 되어 줄에 걸리고 바람에 춤을 추겠지.

특별할 것이 없다.

이렇게 다는 것은 빨래를 널고 말려서 다시 꺼내 입는 것과 같다.

젖은 수건처럼 거짓도, 아픔도, 어둠도 햇볕에 널어두면 깨끗해지겠지.

가벼워지겠지.


오전에는 길었던 감나무 그림자가 점점 짧아진다.

나뭇잎 사이로 햇살이 떨어져 등과 팔에 꽂힌다.

덥다.

나는 나무가 아니므로 피해야 한다.

어둡고 습하고 위험한 곳을 떠나야 한.

평생 유목민으로 이방인으로 사는 이유다.

근본 없는 존재의 비애다.


빨래 잘 마르는, 매미 울기 좋은 한낮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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