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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경재 Jan 31. 2024

봄의 꼬투리

앙(仰) 이목구심서Ⅱ-25


행여나 봄이 오는 소리를 들을까 길을 나선다.

산으로 간 길은 삭풍이 손수 비질을 해 놓아 산뜻하고 고적하다.

지난 가을을 박제해 놓은 양 바짝 마른 풀대들이 길섶에 무리 지어 서 있다.

산의 속살이 드러난 비탈에선 얼었다가 풀어지는 흙덩이들이 속절없이 흘러내린다.

지난봄, 고사리 빽빽하던 자리엔 침묵만이 무성하여

아래 땅속 사정이 궁금해져 온다.

발을 굴러 대지의 문을 두드려본다.

그런다고 고개내밀 성급한 생명들이 아니다.

가벼이 몸을 움직이다간 한 해를 망친다.

걸음을 멈추고 눈으로 조곤조곤 땅을 밟아간다.

'혹시라도 봄의 꼬투리가 보일지 몰라.

이불밑에 숨어있는 연초록 어딨나.

삐져나온 봄의 빌미라도 찾아봐야지.'


다시 숲 속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물기 많던 습지엔 빙벽이 남아 얼음을 타고 물방울이 눈물처럼 똑, 똑 떨어진다.

우측 볕 잘 드는 언덕에 찔레나무 모여있다.

깜짝 선물처럼, 마술처럼 눈앞에 등장한다.

가녀린 손가락 같은 가지에 연두색 새싹이 반지처럼 앉아있다.

 기대 없이 걸음한 산길인 데 찾았다, 봄의 머리카락!

여기서 다소곳하구나.

이 꼬투리를 잡아당기면 연초록 봄이 실타래처럼 줄줄이 따라 나올 것 같다.

칠삭둥이처럼 태어난 너는 지금은 걸음마를 할 수 없다.

하체근력을 키우지 못한 새끼사자는 곳에 웅크리고 있다.

따스한 햇볕이 부어주는 젖을 마시며 몸집을 키워야 한다.

제국의 영토를 넓히려면 기다려야 한다.

더 침묵하고 참아내야 한다.

고독하여 강해져야 한다.

때가 면 빈 가지 우거지리라.

그늘을 거느리고 세상을 점령하여 산과 들을 호령할 것이다.


봄의 꼬투리를 잡고 내려오는 산길에 문득, 내 마음의 계절을 생각한다.

아직 한 번도 정복하지 못한 마음의 봄산이다.

진짜 꼬투리 찾기는 이제부터다.

어디로 가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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