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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경재 Jan 20. 2024

내 맘대로 간병

앙(仰) 이목구심서Ⅱ-24


십여 일 전이다.

새벽미사를 가던 아내가 발목을 겹질려 골절이 되었다.

결국 입원을 하였고 수술을 받았다.

일주일간 병원에서 간병을 했는데 다행히 군 제대한 아들이 4일을, 연가를 써서 3일은 내가 아내의 곁을 지켰다.


퇴근하고 집안일을 마친 후 병실에 들어섰다.

3인 병실에 빈침대가 없어 실내가 비좁다.

뽑힌 무우마냥 허옇게 붕대를 감고 누운 아내와 아들이 눈에 들어온다.

아내는 반가움보다도 아들을 바라보며

"얘는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척척해"

"힘들 텐데도 내색 않고 나를 먼저 살펴줘"

"친구처럼 옆에서 말도 잘 걸어주고"

"간호사도, 옆의 할머니도 '요즘 세상에 이런 아들 없다'라고 칭찬해"

이에 속없이 기분이 좋아진다.

무엇보다 자신을 다스릴 줄 알기에 믿음직스럽고 고마웠다.


그런 아들을 보내고 아내 곁에 섰다.

이후 아내의 불평이 밀가루 반죽 속의 누룩처럼 하나둘 피어올랐다.

나의 간병이 영 맘에 안 든다고 한다.

새벽녘 화장실에 가자는 말에 미간을 비틀며 무거운 몸을 어기적거리며 일어난다.

굼뜨다.

휠체어를 침대에 대고 앉힐 때도,

좁은 화장실에 들어가거나 나올 때도 섬세하지 못해 발을 부딪치게 한다.

환자를 우선시해야 하는데 자기 생각대로 해버린다.

마음이 없이 직업적으로 한다.


거의 20여 년을 장애시설에서 근무해 왔다.

환자 간호에 나름 능숙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직장에서도 잘하는 편이라고 자평한다.

그런데 아내는 나의 케어에 불만을 토한다.


왜 그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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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센 어르신과 발달 장애인을 함께 케어하고 있다.

몇몇 분을 제외하고 대부분이 정상적인 소통이 불가하다.

이런 분들은 스스로를 변호하거나 주장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이를 해석하고 판단해 서비스를 제공하는 게 습관이 되어 왔다.

주요 업무는 매뉴얼대로 한다지만 일상에서는 이를 벗어난 상황들이 부지기수다.

그럴 땐 삶의 경험을 유추해 내어 나름의 방식대로 대처를 해 왔다.

이게 맞는 방법이었을까.

서비스가 때때로 일방적으로 제공되었다고 해야 한다.


돌아보니 상대의 필요나 욕구를 파악하지 못한 채 왜곡된 시선으로 판단해 버렸다.

내 생각대로, 내 방식대로 상황을 진단하는 오류를 범하였다.

이런 식으로 고착되어 온 행동이 적절한 케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아내를 간호하면서 몸에 밴 행동들이 불쑥불쑥 튀어나왔다.

묻지 않고 멋대로 행동해 불만이라는 도적을 불러들였다.

어쩌면 장애인들도 마찬가지겠다.

불만이 있어도 표현할 줄 모르기에, 아니 알아도 방법이 없기에  '꾸욱' 참고만 있겠다.

'평생을.'


자기 마음대로의 케어

자기 취향과 습관의 케어,

자기가 하고 싶은 케어,

자기가 중심이 된 케어,

자기 기분이나 감정이 들어간 케어

이런 케어는 이제 가짜다.

상대 보단 자신의 만족을 위하는 유희일뿐이다.


오늘, 나를 돌아보게 해 준 아내는 면전의 스승이다.

군말 말고 먼저 묻자.

그이가 하라는 대로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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