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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경재 Jan 03. 2024

파도는 바다가 피워내는 꽃이다

앙(仰) 이목구심서Ⅱ-23


  겨울 바다에 왔다.

부산의 상징인 해운대다. 군에서 휴가 나온 아들과 함께해 가족이 모처럼 완전체가 되었다. 바다 가까운 모텔급 호텔에 짐을 풀고 우리는 당연하다는 듯 해변으로 발길을 옮겼다. 바람이 차가웠지만 꽤 많은 사람이 거닐고 있다. 그리고 사람보다 많은 갈매기가 모래사장에 우두커니 서서 바다를 보거나 오가는 사람을 지켜본다. 마치 이 바다의 주인이 자기들이라는 듯이 목을 곧추세우고 그 모습이 태연하여 당당하다.


  멀리 보이는 바다는 수평으로 누워 평화롭기만 하다. 그 수면 위에서 윤슬은 그물에 갇힌 물고기 떼처럼 요동친다. 각각의 찬란한 그 율동의 사금파리들이 망막으로 쏟아져 들어와 한동안 눈꺼풀을 내려 방패로 삼아야 했다. 저 하늘 아래에서 시작한 파도가 점점 어깨를 들어 올리며 가까이 다가온다. 잔잔하다가 때때로 크게 밀려오는 물결에 피할 겨를도 없이 신발이 젖는다. 음의 고저가 반복되는 오케스트라의 선율처럼 파도가 춤을 춘다. 문득 사람 사는 일이 바다와 같다고 생각한다.


  밤바다는 한 마리 고래다.

바다가 검은 생명체로 변하는 늦은 밤에 다시 해운대에 섰다. 한 마리 거대한 고래가 되어 흐느끼는 바다. 이 파도는 고래의 호흡이다. 시커먼 고래가 그 거대한 몸을 유지하고 살아가기 위해 숨 쉬는 것이다. 그가 태초부터 들숨과 날숨을 멈추지 않는 이유다. 요즘엔 고래를 보기가 쉽지 않다고 하지만 아무 바닷가에서나 깊은 밤이면 고래를 만날 수 있다. 나는 살아 꿈틀거리는 한 마리의 검은 고래를 이미 만났다. 그의 심장의 고동을 느끼며 그와 내가 한 생명체요 같은 포유류임을 알게 되었다. 나의 삶이 그의 호흡에 달려있음을 또한 발견한다. 고래의 호흡, 즉 파도가 없다면 나는 이미 없는 존재이다. 바다와 육지를 살리는 것처럼 내 삶이 아름다운 것도 바다가 주는 파도 덕분이다. 끊임없이 밀려와서 마음의 모래밭에 무늬를 수놓는 파도들을 어찌 반기지 않을 수 있을까. 어찌 아프다고 미워만 할 수 있겠는가. 파도는 나를 다듬어 아름답게 만드는 조각가이다.


   파도는 꽃이다.

바다가 피워내는 꽃이다. 바다가 끊임없이 나에게 꽃을 건네주고 있다. 파도는 하얗게 무리 지어 다가오는 커다란 꽃다발이다. 다 괜찮다 괜찮다며 바다가 주는 끝없는 위로이다. 땅 위에 사는, 인연에 매인 존재를 쓰다듬는 바다의 거대한 선물이다. 고맙다, 꽃으로 피어나는 파도여. 꽃으로 떨어져 사그라지는 파도여.


  하늘을 둘로 가르며 횡으로 밀려오는 물결 앞에 여전히 서 있다. 시원하게 가슴을 씻어주는 사이다의 기포처럼 파도는 청량감으로 온몸을 휘감는다. 파도는 몸 안에서 알알이 푸른 거품으로 확확거리며 부풀었다가 한꺼번에 터진다. 그러면 움츠렸던 몸을 부채처럼 펼치며 전율한다. 세상을 떠도느라 혈관을 막아왔던 먼지들이 파도에 모조리 씻겨나가는 느낌이다. 몸과 마음이 한껏 가벼워지고 환해진다. 총총거리는 갈매기의 걸음마냥 허리가 굽은 해변을 따라 내 발자국도 오종종 찍어 놓는다.


  멀리서 보면 한 사람은 수평선처럼 평화롭고 느긋하게 보인다. 웃음꽃이 그 집엔 언제나 피어있을 것만 같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재벌이 된 삼성가(家)에서도 손발이 굽는 희귀 유전병을 앓고 있다고 한다. 이처럼 크고 작은 파도가 개인이나 가족을 끊임없이 흔들어 대는 걸 본다. 누구든 결코 좋은 날들만 있지 않다. 때때로 신발이 젖고 바지를 버린다.


  나는 대부분 이런 오해와 착각 속에서 살아왔다. 나 이외에 모두가 행복해 보인다고, 불행과 고통은 오로지 나만 겪고 있는 것 같다고. 그러나 이제는 진실을 보아야 한다. 이 세상에 나만 겪는 고통은 없다. 나 이외에 누군가도 똑같은 고통을 당하거나 비슷한 일을 겪고 있다. 불행은 이미 삶의 선배들이 겪었으면서도 이겨내었던 경험의 반복이다. 지혜롭게 비켜서거나 무시하거나 아니면 몸으로 부딪치며 참아냈던 일들이다. 고통은 결코 일인칭 소유격이 아니다. 나의 부침은 이미 수많은 그 누군가를 통과해 왔고 이제 내 안마당에 도착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오직 나만이 걸어본 길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자신의 존재를 알리듯 아우성을 치며 몰려드는 파도를 이번에는 멀찌감치 뒤로 물러나 피한다.


  자정을 넘긴 바다에 사람들은 어디론가 돌아가고 인적이 드믈다. 나와 바다와 바닷빛 하늘, 그리고 정수리 위 손톱달이 서로를 지켜보고 있다. 저 작은 달이 파도를 연주하는 지휘자라니.


  손에 쥔 휴대폰이 갑자기 바다를 흔든다. 그 거인은 바로 막둥이다. '어서 돌아오라' 호령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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