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경재 Nov 15. 2024

밤을 지키는 자

앙(仰) 이목구심서Ⅲ -7

밤근무는 그 자체만으로도 힘든 노동이다.

거대한 밤과의 기나긴 다툼의 과정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밤의 주인인 잠과의 투쟁의 시간이다.

이 시간만큼은 습관적으로 나를 무너뜨리려는 잠의 시도는 실패해야 한다.

나는 맹렬하게 잠에 저항한다.


시간이 갈수록 잦아드는 잠의 침투는 더 집요해진다.

나는 허벅지를 꼬집거나 머리털을 움켜쥔다.

일어나 몇 걸음을 걸어보거나 찬물을 마시며 몸에 달라붙은 잠을 떨쳐낸다.

거머리처럼 음습한 잠은 좀처럼 떨어지지 않고 나의 성에서 가장 취약한 곳을 공략한다.

그곳은 가볍고 허술하게 만들어졌으나 세상으로 들어가는 유일한 창문, 곧 눈꺼풀이다.

잠의 시도는 점차 효과를 발휘하여 나의 눈꺼풀이 자꾸 내려가고 무거워진다.

천근만근이 되어 몸 전체를 짓누른다.

그러나 초병에게 잠은 곧 불명예다.

신뢰의 파기라서 절대 물러설 수 없다.

거인 골리앗과의 싸움은 계속된다.

그러나 나는 소년 다윗이 아니다.

좀처럼 승부가 갈리지 않는 줄다리기가 이어진다.


고독은 밤을 지키는 자의 숙명이다.

고독 앞에서 나는 나 자신과 가장 가까이에 있다.

이 밤엔 나 자신만이 친구로 다가온다.

대화가 어둠처럼 깊어갈수록 낯선 나를 조우하니 생경스럽다.

밤근무는 낮에 비해 노동의 부피와 중량이 적다.

하지만 일당백의 현실 아래서 심리적 책임감은 최고조다.

일말의 부담감이 두 어깨 위에 올라가 늘 따라다니기에 육체는 물먹는 하마처럼 축축하고 발은 무겁다.


어쩌면 하느님의 마음도 이런 상태일 거다.

온 우주에 산재하는 피조물의 안부를 챙기고 지키는 책임감에 긴장감을 늘 가지고 사시는 것은 아닐까.

사랑하는 마음 자체만으로도 이미 무게를 가진 굴레이기에 신의 어깨 위엔 부담감과 피로가 켜켜이 쌓여있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결국 하느님도 실수를 하여 고장 난 계명으로 인해 피조물이 다치거나 죽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해 본다.

그렇기에 결국엔 당신 아들까지 지상에 보내셨지 않은가.


밤은 시간의 강물에 떠내려가는 배다.

밤이 도착해야 할 항구는 어디인가.

매일 밤, 밤은 각기 다른 항구에서 닻을 올리고 내린다.

이 배는 지구와 별들을 다 태울만큼 크고, 태풍과 지진을 이겨낼 만큼 튼튼하다.

역사 이래 지금까지 한 번도 고장으로 멈춘 적이 없다.

인류가 유구한 선상생활에서 배멀미 같은 부침을 겪지 않는 이유는 배 위에서의 삶에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밤의 배 위에 올라탔다.

모두가 고향으로 돌아간 시간.

나는 일터에 와 전등처럼 켜있다.

그러나 밤근무의 이면에는 즐거움도 빼놓을 수 없겠다.

하나는 어둠의 속살을 직접 목격한다는 점이다.

밤의 한가운데에 깨어있으면서 밤을 직접 체득하게 된다.

몸으로 밤의 피부를 긁어대어 꿈틀거리게 한다.

그러면 밤은 평소보다 빨리 항구에 도착할 것이다.

다음으로는 물안개 피어오르는 경호강의 속살거리는 밀어를 엿듣는 최초의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빛이 어둠을 지워가는 순간의 광휘.

깨끗하게 씻겨진 산하와 공기는 새로운 시작을 축복한다.


그러나,

지금은 여전히 짓누르는 눈시울과 대치중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일본 방문기(4)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